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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훈련을 시키지 않은 채 언젠가는 말썽을 안 피울 시기가 올 것으로 믿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부모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즉 아이들을 훈련시키지 않아도 결국은 잘 커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개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 중의 하나로 취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이외의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들은 특별히 훈련시키지 않아도 정상적인 개나 고양이가 반드시 됩니다. 문제는 사람도 그러리라고 믿는데 있습니다. 사람이 훈련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동물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훈련시키기에 아직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살은 너무 어리고, 2살은 아직 말도 못 알아 듣고, 3살은 아직 이르고, 4살은 충분히 뛰어 놀게 놔두어야 할 시기이고, 5살은 버릇없는 것이 당연하고, 6살엔 그래도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괜찮고, … 십대에 들어가면 “자식은 내 마음대로 안돼요!”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끝까지 훈련시킬 시기를 찾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훈련을 안 시키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부모가 훈련을 시키다가 도리어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없애버리게 되고, 획일적인 아이가 되게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창조성이 없는 딱딱하고 융통성이 없는 로보트와 같은 아이를 만들까 염려되어 훈련을 안 시키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비교해 봅시다. 지금까지 자녀를 전혀 돌보지 않고 그냥 방치해 두는 가정과 자녀교육에 신경을 쓰는 가정 중에서, 어떤 가정이 더 창조적인 사람들을 많이 배출해 왔습니까?
훈련보다는 문제 거리를 제거해 주는 것이 훌륭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말썽의 소지를 미리 제거해 주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인 것처럼 생각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조용하기만 하면 되고, 안 깨뜨리면 되고, 말썽 안 피우게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신앙교육도 이처럼 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대형교회를 담임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계신 어느 목사님께서 미주판 기독교 신문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담임 목사가 모처럼 심방한 그날 엄마는 두 어린 자녀들의 심리적 상태까지 다 예견하고 평소에 안주던 과자와 비디오 관람까지 제공하는 완벽한 계획을 세움으로써 신통하게도 윗층에서 웃어가며 자기들끼리 더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우리 두 부부는 마음껏 웃고 간증하며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글에서 볼 수 있듯이 훈련시킴으로써 조용히 있을 줄 아는 아이들로 만드는 것에 관해서는 교계의 지도자들조차도 생각해 본 일이 없으시고, 관심도 전혀 없으신 듯 보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자와 비디오로 해결하는 방법을 도리어 칭찬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어른들이 예배 드리는 동안 아이들이 윗층에서 노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조용하기만 하면 됩니까? 윗층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예배드리는 어른들이 말없이 주는 무언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얼마나 즐거워하는지는 생각조차도 해본 일이 없으시고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어른 위주로 어른들만을 위하여 계획되고 진행되기 때문에 아이들을 어떻게 훈련시켜서 훌륭하게 키워볼 것인가는 생각도 안해보고 그냥 문제가 될만한 요소들을 제거시켜서 조용하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 하는 것이 큰 문제인 것입니다.
훈련 없이는 사람이 사람 노릇할 수 없습니다.
훈련을 안 시키기 때문에 사람이 갈수록 연약해지고 자기고집대로 자기 기분대로 할 수 없으면 못 견디게 되는 것입니다. 훈련 안받고 고이 자라는 것이 축복이 아니고, 강한 훈련을 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2/15/2005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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