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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단장한 신부와 같이 성경에서 표현되고 있습니다. 바울 선생님은 교회를 그리스도에게 드릴 “정결한 처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이 다 타락해도 교회만큼은 마지막까지 정결함, 깨끗함,
순결함을 유지해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맞이하려고 한다면 적어도 순결을 유지하려는 것은 정말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세인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관용을 최고의 덕목으로 떠받들며 무엇이든지 받아들여야 하고 무엇이든지 인정해야 한다고 떠드는 이 시대에서는 더욱 교회가 자신의 몸을 신부답게 유지하기 위해서 매우 예민하게 신경을 써야 하는 필요성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의 아름다움과 순수함과 독특한 기능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만물들을 만드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고, 사람을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만드신 모든 것에는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깃들여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아름다움을 가꾸고 살릴 생각을 안 하고 남의 것이 좋아 보여서 끊임없이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을 꼴불견이라고 합니다. 가장 고급스럽고 고상해 보이는 모습은 자기에게 주어진 특성과 특기와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려 나가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교회에는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이 넘치는 말씀, 아름다운 음악과 값없이 주는 섬김, 진심으로 드려지는 예배, 참 사람을 만들기 위한 진실 된 교육, 그리고 용서와 사랑과 은혜가 있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 여러 가지 기관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을 모신 가정과 그런 가정들이 모인 교회만한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정말로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빌리면 “극상품”인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잘 가꾸어 나가는 길만이 교회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능력과 권세를 발휘하려면 교회 나름대로의,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고상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잘 가꾸어 나가면서,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해 나가야지, 자신들의 인간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좋아 보이기만 하면 무조건 흉내 내고, 따라가는 자세는 버려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잃을 때 맛을 잃은 소금과 같아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명심하고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교회에게 주어진 멋과 맛과 기능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맞이할 때까지 교회는 의의 길을 지키는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서 끝까지 지키신 것이 “십자가를 지는 방법”이었습니다. 단순히 이 세상을 얻기 위해서라면 십자가를 지는 대신에, 사탄이 제시한 대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거나
더 쉬운 방법으로 사탄에게 절을 단 한번만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표를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과 방법을 힘입어 충성을 다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일이 교회에서 벌어져서는 안됩니다. 좋은 목적을 위하여 좋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나 히틀러 같은 사람들이 했던 일이 바로 그럴듯한 목적을 내세우면서 무자비한 방법을 정당화 시킨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복음 전파를 위한다고 하지만, 방법이 옳지 못하면 잘 못된
것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의로운 방법만을 고집하는 의로운 자존심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주어진 위치를 지키고 맡은 역할을 바로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가 주어진 위치를 벗어나서 밖에 나가서 남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대신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벌어 들이는 돈이 자기 기대치를 채우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아내가 남편으로 하여금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게
하고 자신이 밖에 나가서 남편 대신 돈을 벌어들이는 일을 하면 돈은 잘 쓸 수 있겠지만 행복을 맛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남편이 조금 벌어오면 그 벌어온 적은 물질 안에서 족한 줄 알고 생활하는 아내를 가진 가정과, 물질이 부족하니 남편 대신 자기가 직접 나서서 돈을 벌겠다고 하는 아내를 둔 가정을 비교해 볼 때, 어느 편이 더 “행복”을 맛보는 가정이겠습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남편을 돕겠다고 하면서 혹시 몸을 팔아서 집안 살림을 보태겠다고 하는 아내가 있다면 “완전히 미친 여자”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을 것이고, 그런데도
좋다고 웃고 있는 남편이 있다면 … … …! 그런데 문제는 아내 된 교회가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과 능력과 선한 뜻을 무시하고 자기의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교회로써의 정체성까지 하찮게 여기며, 별별 희한한 세상 수단과 방법들을 다 받아들이고 또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님은 이름만 내 걸고 앉아서 인간들의 계획을 의지하고 인간들의 수고를 즐기는 무능한 분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 앞에서 주어진 위치와 역할을 바로 지키고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 맞이할 날까지 교회는 몸을 성결하게 지켜야 합니다. 인간의 욕구를 죄의식 없이 채울 수 있는 장소로 교회가 인식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세상에서 하면 더럽지만, 교회 안에 들어와서 하면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안 되는 것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되는 것입니다. 고대의 역사를
보면 음행이 종교적 행사로써 공공연히 행해졌던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 그냥 하면 안 되는 것을 종교라는 이름을 빙자하여, 종교행사의 하나로 정당화 시켜서, 누구나 즐기게 만들어 주면서, 종교가 세력을 키우며 확장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조차도 위험시하는 음악이 교회에 들어와 연주되면 즐겨도 괜찮아 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들에게 밖에 나가서 술을 먹는 것은 나쁘고 집에서 술을 먹는 것은 괜찮다고 하면서 집에서 매일 술 파티를 열어 주는 부모님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술을 멀리하도록 교육시키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지, 밖에서 하는 일을 집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 부모님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댄스파티 장 같은 분위기가 교회 안에서 연출되는 것은 괜찮은 것입니까?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려서 hip hop을 즐기면 위험하고, 교회 안에서 hip hop이나 heavy metal을 즐기는 것은 괜찮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비둘기 팔고 돈 바꿔 주면서 제사 드리려는 사람들의 편의를 봐주던 착한(?)장사꾼들을 다 내어 쫓으셨겠습니까? 아버지의 집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
세상의 것들을 이용하여 남편 되신 그리스도를 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실상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멍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나 선교를 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타락시키는 실수를 저지르면 안 됩니다. 교회는 교회답게 정결함을 유지해야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지친 영혼들이 마음 놓고 찾아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신랑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4:7). 지금이라도 남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숭고한 뜻이 무엇이며, 방법이 무엇이며, 교회들에게 바라시는 요구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생각해 보고 행동해야 합니다.
고난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찢기신 살 덕택에 아내가 된 교회가 남편을 위한다고 하면서, 최고의 지혜와 권능과 권세를 가지신 남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이나 생각에는 관심도 없이, 자기 나름대로 잘해 드리겠다고 온갖 술수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것은 마치 남편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야망에 사로잡혀, 남편인 아합 왕과 자기 자식들과 온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미련하고 고집스럽고 삐뚤어진 이세벨의 행동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또 다시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교회들이
용납하면 안 됩니다.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성실하게 성결하게 순수하게 아름답게 근실하게 부지런히 오직 주께서 교회들에게 맡기신 일에 전념하다가 기쁨으로 주를 맞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2/17/2005 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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