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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 측면에서 본 찬송가와 CCM

 

교회는 각 가정의 부모님들을 도와 신앙적 지도자들을 키워내야 할 책임을 진 기관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나 이 세상에 대하여 맡아야 할 지도자적 역할이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신자들을 세상 사람들의 지도자들로 세우시겠다는 뜻이 담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자라나는 어린 자녀들에게는 더욱 확실히 적용되어야 할 말씀으로써 단순히 구원시켜 천국에 데려가려는 목표 정도가 아님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실 구원은 우리를 택하셨을 때 벌써 이루신 사건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알지도 못했을 때 우리들을 구원하시고자 생명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우리들은 자녀들을 하나님의 기뻐하고 선하신 뜻을 이루어드리는 지도자들로써 키워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미 하나님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우리들의 자녀들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친히 사용하실 수 있는 “신에게 크게 감동한”사람들로 키워낼 것인가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지도자를 키워내기에 합당한 음악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까지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음악도 말씀교육 만큼 중요시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늙어 하늘나라 갈 때까지 언제나 어디서나 머릿속에서 생각나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저절로, 자기도 모르게 입으로 나오는, 신앙적 사고체계의 골격을 이루는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찬송가들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와 같은 모태 신앙인들이 이와 같이 성장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때마다 시편말씀이 입에서 나오곤 했는데, 이 시편들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암송한 말씀들일 것입니다.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부르던 찬송가, 즉 언제나 유사한 상황이 오면 즉시로 떠오르는 찬송가들이 있어야 하고, 이것이 정말로 축복이요 모태 신앙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음악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있었고, 하나님이 음악과 함께 계시고, 음악을 통하여 많은 일을 하고 계시고, 음악이 신자들의 삶과 신앙 성장에 독특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라는 양치기 소년이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기까지의 과정 속에 절대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음악이었습니다. 다윗도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라고 표현할 만큼 특별한 음악적 재능이 있었고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수금을 잘 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소년시절 사울 왕 앞에서 수금을 타면 악신이 떠나갈 만큼 어려서부터 이미 신령한 곡조들을 연주하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성장한 후 인생의 파도를 헤쳐 나가며 지은 시편의 글들을 읽어본 분들이면 누구나 그가 위험했을 때, 잘못을 저질렀을 때, 기뻤을 때, 일이 성취 되었을 때, 실패 했을 때와 같이 중요한 일들이 일어 날 때마다 신령한 노래를 부름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깨닫고, 위로받고, 소망을 얻고, 믿음을 회복하고, 용기를 얻으며 앞으로 나아갔던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기도가 노래였고 노래가 기도였을 것입니다. 슬픈 일이 일어나면 슬픈 노래로, 기쁜 일이 생기면 기쁘게 노래를 부르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확실히 해야 될 점은 다윗이 연주한 곡조나 가사를 붙여 부른 노래는 모두 성령께서 만들어 주신 신령한 곡조와 가사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라고 하면서 시편 110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 사람은 다윗이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노래를 만들어 주시고 부르라고 하신 성령께서, 다윗이 부른 노래를 통하여, 다윗을 성장하게 만들어 주시고, 인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고, 미래를 바라보게 만들어 주시고, 크게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시고, 교만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시고, 겸손하게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했던 것처럼 어린 다윗이 지도자 다윗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그 은혜는 상당부분 노래를 통해서 왔다고 보아야 합니다.

음악은 이와 같이 신앙적 지도자가 되는 과정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은 중립이라는 억지 주장이나, 또는 음악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무책임한 태도에서 나온 발언들입니다. 왜냐하면 손수 음악을 만드셨고, 그 만드신 음악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결국은 제외시켜 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이 좋아하는 음악이고 교회에 다니게 만들어 주는 음악이면 아무 곡조이건 신경 쓸 것이 없다는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다고 인증된 신령한 노래들을 자녀들이 부를 수 있도록 지도해주고, 주님과 만날 그 날까지 신앙을 지탱시켜주고 성장시켜주는 변하지 않는 믿음직스런 대들보와 기둥들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위해서 그 신령한 노래들을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변함없이 귀중히 여김을 받는 찬송곡들이 있어야 합니다. 정금은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보물로 귀하게 여김 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세상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가치가 줄어드는 것들과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귀히 여김을 받는 것들이 있습니다. 음악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의 입에서 사라져 버리다가 세대가 바뀌면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한 때만 유행하는 노래들이 있는 반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세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시대가 달라져도 계속해서 더욱 가치를 인정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는 곡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때 어느 정도 유행하다가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매우 높은 Contemporary Music (지금 유행하는 곡조)과 기독교적 가사를 연합시킨 CCM(Contempoary Christian Music)이 자녀들의 마음을 채우고 지배하게 하는 것은 정말로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CCM이 나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와 영적인 자존심과 담대함과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지도자로 양육시키기에 적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음악보다는 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불릴, 또 부르게 될 만큼 가치 있고 생명력이 있어 역사하는 힘을 발휘하는,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음악들이 장차 지도자가 될 자녀들의 마음에 정착되게 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를 가슴에 안고 전진할 수 있고 또 그 음악을 부르면서 계속 힘을 공급받으면서 지치지 않고 그 진리를 전파할 수 있는 자질과 지혜를 갖출 수 있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음악교육을 시킨다는 차원에서도 신령한 음악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CCM 가수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꽤 자주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한 번도 교회 음악을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찬송가를 듣고 좋아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거룩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그들이 좋아하고 그들에게 맞는 음악에 복음의 메시지를 담아서 전달해 주어야 받아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리 있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일견 이치에 맞는 요소들이 있음에는 틀림없지만, 이런 이유들 때문에 CCM으로 나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령한 음악을 받아드리기에는 거북하기 때문에 CCM을 통해서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교회 예배에서 계속해서 CCM을 부르고,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CCM 이외에는 모르고, 신령한 음악을 접하지 못하고 자란 그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서 부모 세대와 전혀 다른, 부모님들은 모르는, 새로운 세대가 좋아하는, 새로운 장르의 CCM을 부르고, 그 새로운 세대들을 섬기는 교회는 더욱 새로워진 CCM으로 예배드리고, 아이들은 더욱 더 새로운 CCM, 그리고 더 더 새로운 CCM을 부르며 자란 그 사람들은 또 다시 그 부모들이 모르는 더 더 더 새로운 CCM을 좋아하고 …….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교회로 끌어다가 앉혀놓으면 모든 것이 완성된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영의 양식들은 공급해 주지 않고 교인들이 좋아하는 것들만 주겠다는 것은 마치 아이들이 사탕을 좋아하니까 사탕만 주면서 키우겠다는 태도와 똑 같은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교인들이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출석하는 동안 저절로 자연스럽게 영적 성장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생각이 맞는다면 그것을 증명할 확실한 열매들이 맺혀졌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볼 때, 교회 출석인원을 늘릴 수는 있었다 치더라도 교육적 차원에서는 CCM의 역할에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심령을 성장 시키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인 것을 인정한다면 (고전 3:6) 인간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에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오늘날까지 영적인 능력과 건전함을 인정받으며 신앙인들을 키워온, 온갖 종류의 영적 영양분이 듬뿍 담긴 전통적인 신령한 곡조들을 듣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제쳐놓고, 그 대신 세상의 군중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풍의 곡조를 교회에 들여오는 것은 교육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모르는 것을 알게 해 주고,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훈련시켜주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익숙할 수 있도록 연습시켜 주는 것이 교육이 아닙니까? 교회가 놀이동산으로 인식되지 않게 해 주려면 못하는 것을 하게하고, 모르는 것을 깨우쳐 주고, 익숙하지 못했던 것을 익숙하게 만들어 주는 교육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CCM으로는 이런 교육이 힘들기 때문에 재고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담아서 전달할 교회 음악도 말씀과 마찬가지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행가 풍의 곡조는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기에는 너무 문제점이 많습니다. 우선 대중가요 풍의 곡조는 세대가 지나면 없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많아, 마치 몇 번 사용한 후 휴지통에 버리는 일회용(disposable) 용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절대적 진리를 담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필요할 때마다 진리를 내어줄 수 있는 그릇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인기에 바탕을 둔 대중가요 풍의 곡들은 내구성이 안 좋아 오래 반복해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고, 또한 동일한 이유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로운 그릇에 옮겨 담아야 하듯 새로 유행하는 곡조에 계속해서 옮겨 담아야만 하는데, 옮겨 담는 작업이 반복되는 도중,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세월이 흐르면서, 바빠지면서, 상황이 바뀌면서, 진리를 흘리고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대중가요 풍의 곡조는 견고성도 현저히 떨어집니다. 부르고 듣는 사람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자기가 먼저 변해 버리고 말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행가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유행가들 중에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몇 곡이나 됩니까? 마치 온도계와 같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따라다니며 알아주고 상황에 가장 알맞게 대변해 줄 뿐이지요. 있는 그대로, 쓸쓸한 그대로, 외로운 그대로, 아쉬운 마음 그대로, 추억으로 두고두고 남겨두고 싶은 그대로, 지금은 지나갔지만 좋았던 그 때를 잊지 않고 싶은 마음 그대로를 고백하는 것이 유행가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함께 울면서 좋아하고 따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 유행가의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기 때문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진리를 담아 두고두고 전달해 줄 견고한 그릇, 그대로 보존해 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합니다. 즉 세월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더라도 변함없이 언제나 자신에게 교훈과 바르게 함과 유익을 줄 수 있는 “그 진리의 말씀”을 담은 “그 신령한 찬송곡”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또 진리가 변형되지 않도록 잘 보관했다가 그대로 전달해 줄 만큼 견고한 그릇의 역할을 할, 몇 백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강력하게 동일한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는 곡조에 진리를 담아서 이웃들과 자녀들과 또 그 다음 계속해서 이어질 세대들에게까지 변하지 않는 절대적 진리를 대할 수 있도록 전달해 주어야 할 책임이 교회를 이끌어갈 역할을 지금 맡고 있는 분들에게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매일 먹는 음식이지만 자녀들에게 음식하나를 만들어 주는 경우에도, 부모님들은 한 그릇 조차도 소홀히 생각하지 않으시고, 매우 신경을 써서 만들어 줍니다. 왜냐하면 오늘 먹는 음식이 장차 나타날 자녀의 건강과 성장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옷을 고를 때는 몇 달 동안 입다가 던져버릴 옷을 살 수도 있지만, 집을 구입할 때는 몇 개월 후에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경우는 없습니다. 적어도 몇 년을 생각하고 집을 구입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자녀들이 일생동안 읽고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곡조를 택할 때 유행 따라 변하는 옷가지 하나 고르듯이 하는 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단 한곡의 노래를 택하더라도, 아이들이나 형제자매들이 좋아한다고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무조건 부르게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장래에 나타날 결과들까지 생각해서 지금 기도하며 신중을 기하여 찬송곡조들을 택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집을 지을 때, 재료는 크고 작은 것들을 막론하고 전반적인 수준을 맞추어 사용해야 합니다. 임시 숙소를 지으면서 최고급 재료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생동안 살 생각을 하며 꿈에 그리던 집을 짓는 사람은 디자인부터 모든 소소한 재료까지 일일이 신경을 써서, 오래 살아도 싫증나지 않을 보편성과 실용성을 겸한 디자인을 택하고, 견고성과 내구성이 입증된 재료들을 써서 집을 정성을 다하여 지을 것입니다. 신앙의 집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로 음악을 포함한 모든 것에 정성을 바쳐야 합니다. 어떤 것은 중요하고 어떤 것은 아무렇게 지어도 아무런 재료를 써도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쓴다고 해도 나사 하나가 약함으로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최고급이라 할지라도 한 두 개의 불량재료가 건물 전체를 못 쓰게 만드는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집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최고급 재료로 신앙의 집을 지을 때 말씀에 걸맞은 신령한 음악을 사용해야지, 걸맞지 않으면 차라리 음악사용을 배제했던 쯔빙글리(Zwingli)나 시편가만을 고집했던 존 칼빈(John Calvin)의 태도가 더 맞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잘못된 결합에 대하여 언제나 경고의 말씀을 주셔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레 19:19).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신 7:3).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신 22:10-11).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고후 6:14).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 (신 22:9). 이와 같은 말씀들을 참고하여 보건대 하나님의 말씀과 유행가 곡조는 서로 연합함으로 인하여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귀한 말씀들이 “빼앗김”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약삭빠른 사람들은 편리한대로 생각하여 오직 좋은 결과만 생각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 나쁜 미녀”와 “못 생긴 천재”가 결합할 때, “미녀천재”가 나오리라 예상하는 것은 엿장수 맘대로 하는 희망사항일 뿐이지 실제로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혹시라도 “못생긴 둔재”가 나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세상 곡조와 하나님의 말씀을 결합시켜서, 즉 “인기 있는 유행가”와 “딱딱한 생명의 말씀”이 연합되어 “인기 있는 생명의 말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희망사항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교회를 “딱딱한 유행가”를 부르는 곳으로 잘못 생각하도록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하고 올바른 방향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이상적인 결합은 예수님과의 결합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 11:29-30).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타인 지방의 멍에는 혼자 메는 것이 아니라 꼭 짝을 이루어 메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는 예수님과 함께 그 멍에를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의 멍에를 예수님과 겨리 하여 함께 메고 배우면서 하나님께서 뜻하신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입니다. 혹시라도 예수님 대신 유행가의 힘을 의지하고자하면 복음의 전파는커녕 이미 알고 있었던 복된 말씀들조차 다 “빼앗김”이 될 가능성이 너무 높다는 사실을 아시고, 지금이라도 인간의 방법을 버리고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만들어 놓으신 음악들부터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부모님들과 사역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2/17/2005 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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