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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 지니라” (잠 4:7). 착한 것도, 선한 것도, 하나님에 대한 열정도 다 좋지만 더 필요한 것은 지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결과가
어떠할지를 살피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약은
약효가 있어야 하지만, 약효보다 부작용이 더
세다고 하면 약을 안 먹는 것이 지혜일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CCM을 높게 평가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CCM 가수들은 CCM이 믿지 않는 영혼들을 구원해 내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복음전파의 수단이라고 굳게 믿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세상에서 인기리에 유행하는 대중가요 풍의 음악을 교회가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행가
풍의 곡조에 성경적인 가사를 붙인 CCM곡들을 새로 만들어서 교회 안과 밖에서 사용함으로 세상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CCM속에 담겨져 있는 복된 소식을 듣게 되어 자연스럽게 교회로 편안히 들어올 수 있도록 교회가 먼저 세상을 향하여 문을 활짝 열고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세상 사람들도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드리고 교회로 들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라”고 잠언서와 이사야서에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볼 때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는 생각이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낳아 기르고 있는 자식도 다스리기 힘들어 애를 쓰는데 타락한 인간들의 마음을 음악을 사용하여 선하고 의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는 것은 세상을 너무 쉽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사탄들이 꽉 잡고 있는 세상에서 음악으로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음악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마도 낙타를 바늘구멍으로 들여보내려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타락은 뱀의 그럴듯한 말 몇 마디에 이루어진 일이지만, 구원은 독생자 예수께서 극한 고난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며 우리를
대신해서 손수 십자가에 달려져 제물이 되어 죽으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더불어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은 후 예수를 믿고 따르는 신도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고 땀과 눈물을 쏟아온 결과였던 것입니다. 타락은 쉽게 일어났지만,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을 쉽게 끌 수 있는 CCM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겠다는 구상은 성령께서 지금까지 역사하셨던 전통적인 복음전파의 개념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복음전파 문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복음전파라는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먼저 확실히 하고 가야 할 것은 이제부터 언급하고자 하는 “복음전파”라는 단어의 뜻은 “단순히 교회로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아시고 글을 읽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요즈음 상당히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는 말씀을 복음전파로 생각하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교회로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 복음전파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끈질기게 좇아오는 오병이어의 큰 무리들을 일부러 흩어버리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무조건 몰려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누구든지 교회로 초청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그리스도인이 가진 기본 중의 기본자세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때가 있는 법입니다. 교회로
초대하기 전에 정말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고 주인으로 영접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단한 사람들을 교회로 초대하는 것이 올바르고 정상적인 순서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솔로몬과 예수의 제자들에게 배울 점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할 때 돌을 뜨는 곳에서 돌을 다듬게 한 후, 정확하게 다듬은 돌을 가져다가 건축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는 동안 전 안에서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일부터 하지 않고, 먼저 동네를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무조건 초대부터 먼저 할 것이 아니라,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교회로 초대해야 교회 내에서 잡음과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언급하는 “복음전파”의 뜻은 이와 같은 원칙에 입각하여 단순한 초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내가 만난 예수님을 진심으로 소개해 주고 복된 소식을 전해 주면서 듣는 이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고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아시고 글을 읽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복음전파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수행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역사가 말해 주고 있는 사실입니다. 먼저 각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셨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했고, 성령께서 기사와 표적이 많이 일어나게 하셨고, 성령께서 구원 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스데반으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증거하게 하시고, 성령이 빌립에게 전도를 지시하시고 전도를 끝내는 순간 30-40마일이나 떨어진 아소도로 옮겨 주시고, 성령이 베드로를 사용하셔서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성령이 이방인인 고넬료의 가정에 임하시고, 성령이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세우시고, 성령이 이적과 기사를 일으키시고, 성령이 아시아에서 전도하려는 바울을 막으시고 대신 유럽으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성령이 바울로 하여금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등등 끝이 없습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구원해 주신 창조주 하나님은
꿔다 놓은 보리자루가 아닐뿐더러, 인간들이 주장하는 세상에 초대받아 조용히 미소만 지으면서 앉아계신 손님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계획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실질적으로 가장 부지런히 일하시는 온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때나 장소나 대상도 하나님이 정하시고, 계획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능력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것이고, 지혜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구체적 방법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복음 전파는 성령님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고, 사람이나 음악은 단지 성령님에 의해서 쓰임을 받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한다면 복음 전도자들은 무언가 나름대로 작품을 만들겠다는 태도보다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철저히 순종하여 쓰임 받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사람이 복음전파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령께서 사람에게 능력을 베푸시고 인도해 주심으로 되는 일이지, 사람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따라서 복음 전파가 잘 되니까 CCM이 필요하다는 주관적 사고방식보다는
복음을 전파하시는 성령께서 CCM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CCM 문제를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음악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입니다. 음악을 통하여 복음의 내용을 들려 줄 수는 있지만, 복음의 내용이 저절로 이해되어 마음을 열고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고 주로 영접하게 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예수님과 구원에 대하여 깨닫는 것은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비로소 가능해 지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7)”라고 하셨고, 또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라고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실제로 전파 되려면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그 음악을 사용하실 때만, 비로소 음악을 통하여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전파에 관한한 CCM의 적합성이나 부적합성은 어디까지나 음악 자체가 가진 곡이나 가사의 능력이 아니라, 음악을 쓰시는 하나님의 뜻에 달린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곡이나 가사 자체가 좋으냐 나쁘냐, 또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느냐 없느냐, 또는 오래된 곡이냐 새로운 곡이냐를 떠나서 성령께서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 곡인지 아닌지가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임의로 노래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태도는 이방종교에나 있는 비기독교적 자세이지 전혀 성경에서 나온 기독교적 자세가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순교자)이 되리라” (행 1:8). 세상에서 복음전파가 이루어지려면 “본이 될 만한 신앙인격과 신앙생활”이 기본으로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증인(martus)”과 “순교자(martus)”는 동일한 헬라어 단어입니다. 즉 증인이 된다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가장
필요로 하는 복음전파의 핵심도구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음악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것은 단순히 과거에 한번 경험했던 체험을 입으로 말해 주라는 정도의 뜻이 아니라, 실제로 옛사람은 죽고 새롭게 거듭나서 예수 믿고 살아가는 신자다운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라는 뜻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세상 사람들 보기에 정말 부끄러운 “자칭 신자들”이 참 많습니다. 과거에는 예수를 만난 적이 있었고 뜨거운 체험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을 되뇌며 자랑하는
말만하고 있지, 실질적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은, 예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거나 어떤 때는 도리어 세상 사람들보다도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CCM을 통하여 전도하려는 정성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 믿고 완전히 달라진 새롭게 거듭난 나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와 180° 다른, 완전히 새로운 인생 목표,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자세,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증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는 나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얼마든지 큰 복음전파의 역사를 이루 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7). 부모님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웃을 위하여는 본을 보여 주어야 하지만, 자녀들을 위하여는 입을 벌려서 “말로 가르치는 것”이 본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웃들에게는 사랑을
실천하여 본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부모의 사랑을 이미 받고 있는 자녀들에게는 입술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가 되면 안 됩니다. 입만 살아서 오로지 말로만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면 예수 소리만 들어도 치를 떠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자녀들에게 억지로 본을 보이려하다가 위선으로 비쳐지게 되어 도리어 자녀들을 불신의 세계로 내 몰 수도 있는 것입니다. 즉 집에서는 본을 못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부지런히 전해야 신앙이 전수될 수 있고, 반면에 밖에서는, 입을 벌리기 전에, 행동으로 신자다운
본을 보여야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음악도 입술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신자들이 신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 아무리 매력적인 목소리로 인기가 넘치는 CCM을 불러도 CCM에 담긴 복음의 멧세지는 전달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CCM 음악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신앙인격과 신앙생활 됨됨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복음전파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복음전파의 주체는 누구인지, 복음전파에 있어서 필수요소들이 무엇인지, 복음전파에 있어서 음악의 위치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음악은 복음전파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의 말대로 복음전파의
핵심인 구원 문제에 있어서 CCM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아디아포라(adiaphora)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전파에서 CCM이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은 생각보다 상당히 미약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CCM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부정적인 문제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은 밝은 면과 함께 어두운 면도 있다는 것은 자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CCM을 앞잡이로 내세운 복음전파 사역 과정들을 살펴보면서 발생했던 부작용들과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종합하여 검토해 보면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음악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CCM 위주의 복음전파는 전통적인 교회 음악을 거의 접해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많습니다. CCM을 선호하는 인도자를 통하여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CCM을 좋아하게 되고 CCM만 아는 교인이 되기 쉬운 것은 당연합니다. “새로 이민 오는 사람의 직업은 공항에 마중 나가는 사람의 직업에 의해서
결정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민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이면 거의 모두가 공감하는 말입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중 나가는 사람이 페인터(painter)이면 새로 이민 오는 사람이 페인터가 될 가능성이 높고, 마중 나가는 사람이 스왑밋(swap meet) 장사이면 이민 오는 사람도 스왑밋 장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모른 채 새로운 땅에 온 사람은 조금이라도 먼저 와서 자리 잡은 사람의 조언에 따라 인도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로 초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계통의 신자에 의해서 교회로 인도 받는가에 따라서 인도자와 거의
비슷한 부류의, 비슷한 수준의, 비슷한 성향의 교인이 되기 마련인 것입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축구회 교인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다가 교회에 다니게 된 사람은 축구회 교우들을 목표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축구회 신자들의 신앙 수준이 최고의 높은 목표치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축구회 교우들이 정말 훌륭한 신앙인들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겠지만, 혹시라도 하나님보다 축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면 축구회 교인들에게 인도함을 받은 사람은 성숙된 신앙인이 되기까지 필요이상으로 오랜 세월동안 여기저기로 방황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CCM 인도자도 마찬가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CCM이 좋아서, 또는 CCM으로 인하여 교회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전통적인 교회음악보다는 CCM을 선호하는 인도자의 취미와 문화와 목표와 가치관과 신앙관을 배워 그대로 따라 답습해 갈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결과적으로 CCM을 통한 전도는 전도 받은 사람들이 CCM의 세계에만 머무르게 될 가능성이 너무 높은 것이고, 이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문제에서는 음악이 본질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 문제에서는 음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자체가 가진 힘이 매우 큽니다. 우울하게 만드는 곡이 있고, 기쁘게 만드는 곡이 있고,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곳이 있고, 차분하게 만드는 곡이 있습니다. 가사도 마찬가지의 역할을 합니다. 전통적인 교회 음악은 성령께서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시고, 지식을 주시고, 믿음을 키워주시고, 고난을 극복하게 도와주시고, 교육시켜 주시기 위하여 손수 만들어 주신 곡과 가사들로 구성된 신령한 노래들인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만들어진 전통적인 교회음악들과 비교해서 CCM도 동일한
가치와 기능을 갖추고 있다면 괜찮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전통적인 찬송가가 제공해 주는 만큼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기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적 복음전파 방법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신앙인격과 신앙생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들의 전도를 받아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누구나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들을 하나하나 거치면서 자기 것으로 습득하고 잘 소화시키면서 건실하게 성장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CCM 전도는 이런 과정들을 생략할 수
있게 만들어 줌으로 인하여, 특히 전통적인 교회 음악에 담아 공급되는 영적 양식들과 매우 유익한 교육지침들과 성령의 도우심을 알지도 못한 채 교회에 다니게 해 줌으로 인하여 영양실조에 걸려 제대로 자라지 못한 허약하고 비정상적인 신자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CCM으로 인하여 귀중한 복음이 업신여김을 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잃어버린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예수님은 온갖 비난과 업신여김도 기꺼이 당하셨지만, 음악의 종류 때문에 기독교 위상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CCM은 많은 대중들의 인기를 누리는 세상 음악 장르와 연관을
가지고 있는 부류의 음악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도 CCM을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는 이미지와 느낌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그 이미지와 느낌이 긍정적이고 신령한 것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겠지만, 혹시라도, 예를 들면, 술집의 이미지나 느낌이 오게 된다면, 술집과 교회가 연관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이미지, 교회에 대한 선입관, 교회와 연관된 대중들의 정서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좋은 정서를 만들지 못하면 결국 선교는 실패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대략 비슷한 시기에 복음의 메시지가 전달되었지만,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에는 유독 기독교가 매우 강하게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이나 베트남 국민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강점하고 있는 서양인들이 믿는 기독교에 대하여 나쁜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반하여 한국인들은 기독교가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으려는 한국인들을 돕는 선봉에 선 고맙고 의로운 종교라는 좋은 정서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CCM을 복음전파의 선봉으로 세우는 일에 조심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당장은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에 대하여 선교적인 면에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복음을 “올바르게” 전파해야 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책임입니다. 무조건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복음전파에도 순서가 있고, 지켜야 할 규율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 순서를 지켜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윗이 불레셋 군대와 싸우러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주신 말씀입니다.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삼하 5:24)” 다윗의 군대가 불레셋과 싸우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앞서서 불레셋을 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 전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의 심령 안에 돌들이 널려있고, 가시들이 덤불을 이루고 있고, 아무나 지나다니는 길들이 있으면 복음의 씨앗을 아무리 많이 “퍼 부어도” 복음전파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호흡이 맞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앞서서 심령의 돌이나 가시덤불이나 길을 제거하시는
역사를 이루시면 우리는 그 뒤를 따르는 순서를 지켜야 합니다. 두 번째 책임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을 그대로 전해 주어야 합니다. 복음의 내용을 자기 마음대로 더하거나 빼거나 변경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해나 곡해의 소지가 없도록 전하는 자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록 가수였던 사람이 예수를 믿은 후 관중들 앞에서 대중가요를 공연하는 것과 똑같은 차림새와 몸동작과 창법으로 CCM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청중들이 열광하기 시작하여 휘파람을 불고 곡조에 맞추어 따라 부르기도 하고 개중에는
일어나 몸을 흔들며 춤은 추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공연하는 동안 어떻게 해서든 음악에 담아서 전달하고자 했던 복음의 메시지는 빠지고 단지 음악만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는 공연을 했던 기독교 음악인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소자 중 하나라도 실족케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몇 사람 교회로 오는 것만 생각했지 영적으로 갈한 목을 축이기 위하여 찾아 왔던 소자들이 세상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며 도리어 실족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고 청중 동원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면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책임질 줄 아는 기독교 음악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는 경우, CCM이 복음을 전파하는 전위대의 역할을 하기 보다는 복음전파에 방해자 역할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CCM을 통한 복음전파는 교회 안에서 세상적인 것들을 즐길 수 있는 구실과 합법적인 기회를 제공함으로 인하여 교회를 부패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CCM을 즐기는 사람들 중 95%가 교인들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CCM은 세상 사람들을 위한 복음적 음악이 아니라, 교인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음악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CCM이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CM이 좋아서 세상에서 교회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 중에는 CCM을 성경 말씀으로 포장한 유행가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청소년 집회를 가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듣는 장소가 교회일 뿐이지 곡조나 번쩍대는 무대 장치나 연주자나 청중이나 세상 것들을 그대로 교회 안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려면 차라리 밖에서 할 것이지 왜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옵니까? 예수님께서 오죽하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책상을
뒤엎고 사람들을 쫒아내었겠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CCM을 교회 안에서 허용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대로, CCM이 교회에서 트로이목마와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까지 외부적 박해나 억누름이나 배고픔 때문에 파괴된 적은 없습니다. 물론 건물이나 조직은 파괴되곤 했지만, 도리어 그럼으로 인하여 외부에서 가해지는 박해는 용광로의 뜨거운 불길처럼 교회의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건전하고 착실하게 성장하도록 만드는 밑거름들이 되곤 했었습니다.
교회가 가장 주의해야 할 대상은 외부적 박해나 환경적 어려움이 아니라, 스스로 빠져드는 내부적 부패인 것입니다. 복음전파도 물론 좋지만, CCM을 교회 안에서 허용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CCM은 복음 전도자를 타락시킬 가능성이 비교적 높습니다. “방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으면 술객은 무용하니라” (전10:11). 방술사가 뱀에게 물리면 모든 것이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뱀을 다루는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CCM을 이용하여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분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CCM을 통한 복음전파
사역이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열심히 CCM을 부르던 사람들이 도리어 세상으로 끌려 나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CCM을 복음 전파의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비교적 손쉽게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드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을 치료해 준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안 내 살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사장들은 성막에 들어가 섬기기 전에 자신들부터 피로써 정결하게 하는 예식을 먼저 행하고, 그 후에 성막에 들어가서
섬겼습니다. 우선적으로 자신부터 살폈던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 할 때는 자신부터 먼저 보호하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군인이 전장에 나갈 때도 방독면이나 방탄조끼 같은 것을 입은 다음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독사에게 물리고, 내가 먼저 병에 걸리고, 내가 먼저 총에 맞으면 일은 커녕 목숨을 구하기도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 16:26). 왜 학생이 교복을 입는 것이 좋습니까? 학생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결혼식을 굳이 많은
사람 앞에서 올립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었음을 선포함으로 세상 유혹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구원시키고 자기는 타락하는 일이 발생된다면 그것처럼 억울한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 유행하는 곡조와 맥을 같이하는 CCM을 부르면서 오직 신령한 은혜만 받지 세상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분이나 되겠습니까?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CCM 가수들이 자신들은 스스로 세상 곡조를 즐기기 위해서 복음 성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그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서 CCM을 부르고 있다는 주장을 그대로 순수하게 믿더라도 여전히 교회 안으로 CCM을 끌고 들어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꼭 알고, 자신들과 교우들과 이웃들의 장래를 생각하여 CCM을 복음전파의 수단이라고 주장하며 교회 안으로 들여오겠다고 고집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찬송은 본래 “찬송을 부르는 본인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귀하고 귀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신앙을 회복하고 유지하고 성숙 되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 영적으로 도와 줄 수 있는 곡조와 가사를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 뿐만 아니라 “곡조”도 똑같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행진곡은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모두 힘을 얻게 만들어 주고, 자장가는 잠이 오게 만들어 주고, 애조를 띤 곡들은 사람을 우울한 애수에 잠기게 만들어 줍니다. 이것은 곡조가 미치는 영향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하나의 실례일 뿐입니다. 찬송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동시에 CCM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아가는 것에 대하여 심히 염려가 되는 것도 바로 세상에서 유행하고 있는 곡조의 특성들을 그대로 품고 있기 때문에, 부르고 듣는 가운데, 세상에서 그런 곡조들이 발휘하던 것과 똑같은 영향력을 CCM을 부르고 듣는
신도들에게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노래를 구성하는 곡과 가사는 우선적으로 일단 부르는 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먼저 발휘하고, 그 다음으로 듣는 사람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곡조는 CCM을 부르는 사람들에게나 듣는 사람들에게 세상에서와 동일한 영향력을 안 미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한 결과에 너무 신경 쓰지 맙시다. 복음 전파의 주체는 성령님이십니다. 따라서 열매가 맺느냐 마느냐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증인들은 증인역할만 충실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복음전파의 결과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실 것을 확실히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지시하시기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 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제자들의 책임이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과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이 책임질 몫이 되는 된다는 것입니다. CCM을 사용하여 복음전파를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복음전파 자체보다는 많은 사람이 교회에 오게 만드는 결과를 당장 보고 싶어 하는 조급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즉 한 두 사람에게 만이라도 충실하게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싶고, 눈에 보이는 많은 결과를 얻고 싶기 때문에 CCM을 등장 시켜서 복음전파의 전방에 배치시키게 된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충성스런 종이 가져야 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눈앞에 보이는 자랑거리에 신경 쓰지 말고, 오직 맡겨진 일 자체를 충성스럽게 해 나가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 13:33). 건강한 누룩은 조금만 넣어도 결국에는 전부를 부풀게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마치 교회의 능력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진리 위에 선 교회는 주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고, 동시에 주위 사람들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제대로 신자들이 신자답게 믿음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면 굳이 CCM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의 상태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종합하여 생각해 볼 때, CCM을 필수적 복음전파의 수단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상당히 인간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어떤 면에서는 세상 옛 습관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싶어서 주장하는 핑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밖에서
CCM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열심을 따라 다니며 말릴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복음전파의 효율성이나 능동성을 강조하면서 교회 안으로까지 CCM을 끌고 들어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잠 3:21).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2/17/2005 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 찬송가와 CCM, 새 노래란?
▶ 교육적 측면에서 본 찬송가와 CCM
▶ 예배란?
▶ 예배음악과 개혁
▶ 찬양과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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