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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The Prophet)”와 “사람의 아들 예수 (Jesus, The Son of Man)”이라는 책들의 저자로 유명한 칼릴지브란 (Kahlil Gibran)이 자녀교육에 관하여 쓴 아래의 글을 읽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입니다. 비록 아이들이 당신과 함께 있지만 그들은 당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당신의 생각을 아이에게 주려고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자녀들의
몸을 집에 둘 수는 있지만
그들의 정신은 속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정신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집은 당신이 방문할 수 없고 꿈속에서조차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처럼 되려고 노력은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 하지는 마세요. 왜냐하면 생명은 뒤로 가지도 않고 내일과 함께 머무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화살과 같은 당신의 아이들을 쏘아 보내는 활과 같은 존재입니다. 활을 쏘는 하나님은 멀리 있는 과녁을 응시하고, 당신을 힘껏 당겨서 그분의 화살을 엄청난 속도로 멀리 보내실 것입니다. 활을 쏘시는
분이 당신을 활로 사용하여 시위를 당길 때 기뻐하세요. 왜냐하면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것처럼, 견실한 활도 역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매우 그럴 듯하게 보이는 글입니다. 너무나 지당한 것 같이 들립니다. 실제로 옳은 주장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아오고 있고,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나름대로 자유롭게 자라갈 수 있도록 지켜 봐주고 도와주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 글이 우리들에게 전하여
주는 내용은 성경이 가르쳐주는 지침과는 완전 반대인 주장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생각”을 아이에게 “반드시 넣어 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님의 책임입니다. 우리의 아이는 내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정확하게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생각하는 것이 처음부터 하나님처럼 올바르기 때문에 건드릴
필요도 없는 성인의 상태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의로운 생각과 판단을 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태어났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말하길 “당신의 생각을 아이에게 주려고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자녀들의 몸을 집에 둘 수는 있지만 그들의 정신은 속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정신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집은 당신이 방문할 수 없고 꿈속에서조차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입니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성경에서 나온 신앙적 사고가 아니라,
바로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본주의적 사상에 근거를 둔 잘못된 주장인 것입니다. 성경 말씀이 진단하는 인간의 문제점은, 특히 아이들의 문제점은, 장래의 될 일들과 장래에 갈 곳에 관하여 "생각 없이" 무식한 상태로 짐승처럼 살아갈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받지 못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인간은 누구나 짐승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나서, 짐승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가, 짐승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죽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서 인간의 실상을
알려 주시곤
하셨는데, 그 중에 한번은 인간에게 들어가는 것이 인간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인간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즉 인간의 입에서 더러운 것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연인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들의 속은 태어날 때부터 더러운 것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모님들이 올바른 사상,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의식을 교육을 통하여 아이들의 정신 속에 불어 넣어 주지 않으면 아이 스스로는 올바른 생각을 할 수도 없고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질 수도 없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인본주의(Humanism)에 기초를 둔 현대 사조의 문제점은 인간이 선한 상태로 태어났을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을 그냥 놔두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의 속성, 곧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 성경의 단언입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자연스럽게 죄악된 길을 가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성을 지닌 인간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당연히 교만하여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비하하고, 업신여기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상처주고, 욕심부리고, 약탈과 분쟁과 분냄과 불만과 불평과 원망과 게으름과 괴롭힘 등등, 악할 수밖에 없는데, 자녀들을 그냥 놔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은 아이들이 반드시 확실한 악인들로 성장하도록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그냥 커가도록 가만 놔두고 잘 자라 줄 것을 기대 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먼저 부모님이 성경의 진리를 부지런히 아이들의
마음속에, 생각 속에, 불어 넣어 주어서 올바른 생각의 세계를 정립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조직적으로 부지런히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녀를 속박하는 것과 올바른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합니다. 그는 말하길 “자녀들의 몸을 집에 둘 수는 있지만 그들의 정신은 속박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진리라고 믿는 것을 전달해 주고, 진리대로
살도록 훈련시키는 것을 단순히 자녀들의 정신세계에 억압의 굴레를 씌우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자세입니다. 더구나 진리의 말씀과 진리대로 사는 생활을 가르쳐 주고 훈련시키는 문제를 속박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인식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결혼도 속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만 사랑하기로 약속하고, 그 약속에 매여 사는 것 자체가 속박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혼은 우리들에게 속박이 아니라 자유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귀한 제도인 것입니다. 다리의
난간은 우리의 행동을 제약해 주지만, 우리는 다리의 난간을 속박하는 장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를 보호해 주는 안전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악한 세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확실한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주고, 나쁜 사상들이 들어와 자리 잡지 못하게 만들어 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 왜 속박이 됩니까? 자녀들에게 학문과 진리를 접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막는 것은 속박이 될 수 있지만,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생각을 알게 해 주는 것은 속박이 아니라 안전장치와 마찬가지로 길과 진리와 생명을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셋째로, 부모와 자녀들이 분명히 들어가야 함께 거해야 할 천국이라는 본향이 있음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칼릴지브란은 “아이의 정신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집은 당신이
방문할 수 없고 꿈속에서조차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입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이것은
적어도 신앙적인 면에서는 분명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부모가 방문할 수 없고 꿈속에서 조차 갈 수 없는 곳으로 자녀들이 가게 된다면 그것은 보통 큰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님과 자녀들이 함께 마음으로 사모하다가 결국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들어가야 할 본향,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 살면서 우리들은 자녀들을 포함한 모든 믿는 형제자매들과 영원히 살아야 할 나라에 이미 속해 있음을 알고 천국 시민답게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자녀들에게도 앞으로 함께 영원토록 살아야 할 나라인 천국의 시민답게 살 수
있도록 간섭하고 가르쳐주고, 뚜렷한 목표를 세워주고, 끝까지 믿고 한결 같은 모습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줄 책임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부모가 자녀의 위치로 내려갈 것이 아니라, 자녀들을 어른처럼 예우해 주어야 제대로 교육을 시킬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처럼 되려고 노력은 할 수 있지만”이라고 말하는 것은
듣기에는 너무 그럴 듯하지만, 실상은 이런
주장보다 더 자녀 교육을 방해하는 주장은
없을 정도로 잘못된 말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위치로 내려가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예를 들면, 아이가 버릇없이 떠들고 뛰고 어지럽힐 때, 부모가 자녀의 위치로 내려가려고 노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부모의 말을 무시할 때 아이를 어떻게 대하실 것입니까? 아이 때는 떠드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신경조직이 완전하지 못하니 떨어뜨리고 깨뜨리는 것이 당연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은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니 좋은 현상이고, 어지럽히는 것은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므로 그냥 놔두어야 창조적인 아이가 되고… 결국 버릇없고, 어리석고,
좌충우돌하고, 어지럽히는 아이를 부모님은 계속해서 이해 주고, 도와주고, 여전히 사랑해 주고, 격려해 주고,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도와주고, 억압하지 말고, 훈련시키지 말고, 항상 좋게 상냥하게 친절하게 끝까지 참으며 견디며 아이편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라고 할지라도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마땅히 가르쳐 주어야 할 것들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즉 부모가 자녀의 위치로 내려가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자녀가 부모의 위치로 올라올 수 있도록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길을 인도해 주고, 격려해 주고, 밀어주고, 보살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예수 믿는 나”처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교육 문제를 단순히 “부모와 같아지게 만든다.”라는 차원에서 보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고 절대적인 진리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참으로 답답하고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아이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 하지는 마세요. 왜냐하면 생명은 뒤로 가지도 않고 내일과 함께 머무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도 그런 의미에서 지극히 잘못된 권고입니다. 아무리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도 2천여 년 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예수에게 속하지 아니하면 소망이 없습니다. 물론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육신으로서의 자신과 같아지기를 강요하면 절대로 안 되지만, 예수 믿는 상태인 자신, 예수에게
속한 상태인 자신을 닮을 것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나 지당한 요구인 것입니다.
당연한 정도가 아니고 이것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으라고 권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믿는 것만 맞는다고 주장하지 말고, 당신이 믿는 것을 남에게 믿으라고 강요하지 마시오.”라고 떠들어 댑니다. 하지만 나의 가장 사랑하는 자녀에게 왜 내가 믿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는 일에 소극적이어야 합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과 함께 2천여 년 전에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돌아가신 예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진리를 발견한 사람만이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심령적인 면에서는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자신이 알고, 의지하고, 소망하고, 사랑하는 예수를 소개 시켜주고, 그 분의 뜻을 따르라고 간절히, 자신 있게, 권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내일 이라는 시간에게 그냥 내어 맡겨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예수를 만나보지 않고는 예수를 알 수 없습니다. 먼저 만나본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예수를 믿고 살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를 먼저 믿게 된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자신에게 생명을 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고, 성서적 가치관이나 인생관을 가르쳐 주고, 신령한 세계를
마땅히 소개해 주고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비록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총독과 왕을 대하면서 사도 바울은 자신 있게 자신과 같아 졌으면 좋겠다고 권했던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언젠가는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그 때가 오기 전에,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속에 거하시는 예수를 적극적으로 소개해 주고 알게 해 주고, 체험시켜주고, 훈련시켜 줌으로 부모 곁을 떠날 때에 자녀들이 스스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내일”이라는 세계로 떠날 수 있도록 미리 부지런히 준비시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2/17/2005 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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