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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분리시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치와 종교기관과는 분리되어야 합니다.
정치와 특정 종교 단체가 유착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분리시켜야 합니다. 정치와 종교 기관과의 결합은 언제나 교회를 부패하게 만들고, 정치를 썩게 만듭니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정치와 종교기관이 서로 결합되어 서로의 유익을 위하여 도와주고 도움을 얻고 감싸주면서 파국을 향하여 달려가곤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세교회와 왕들의 결합이
그런 예들 중의 하나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왕으로 등극할 때, 그 자격을 교회가 주고, 백성들로 하여금 왕의 권세를 인정하고 명령을 듣게 만들어 줌으로, 왕의 위치를 견고하게 만들어 주고, 왕은 나라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에 하나의 종교만을 국교로 지정했고, 국가가 인정하는 종교기관만이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신 교회는 왕과 그의 신하들의 도움으로 교세를 확장하고 재원도 확보하고 권세도 누리고, 교권의 보장을 받아 누구나 교회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일일이 관여하면서 종교적 특권과
권세를 누리며 지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왕의 통치와 교회의 통치에 눌린 대다수의 국민들은 종교를 선택할 자유나 지식이 없이 눈이 멀고 귀가 막힌 상태로 힘겹게 살다가 생을 마치곤 했습니다. 종교전쟁으로 명명된 십자군 전쟁이나 30년 전쟁은 명분상으로는 종교전쟁이었지만, 실상은 종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정치인들과 경제인들과 종교지도자들과 우매한 백성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벌어진 야비한 인간들의 야합과 다툼이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십자군 전쟁은 비잔틴 왕국의 Alexius I 황제가 Urban Ⅱ
로마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Urban Ⅱ 로마교황은 유럽 국가들에게 성전의 당위성을 외침으로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신앙문제로 인하여 분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적인 입지를 공고히 하고 서방기독교의 확장을 꾀하던 교황과 자신의 영토를 지키고 싶었던 비잔틴의 황제와, 명예와 재물을 갈구하고 있었던 유럽의 서민들의 욕구가 한곳으로 모여 성사되었던 완전히 속물들이 벌인 세상적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30년 전쟁 (Thirty Years‘ War)도 명분상으로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맞붙은 종교 전쟁이었지만, 실제로는 열강들의 권력과
영토의 “종교를 빙자한 정치적 전쟁”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언뜻 보기에는 순수한 종교 문제로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많은 문제들이 실상은 정치인들과 타락한 종교기관의 타락한 지도자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로의 이득을 위하여 야합함으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의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은 정치와 종교 기관이 서로 결탁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원칙은 이런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즉 단순히 종교적인 신념이나 상징물들을 없애는 식의 분리는 또 다시 “정치와 무종교
세력의 야합”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로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이루려면 종교기관과 정치의 분리에 초점을 맞추어야지, 건전한 종교의 가르침 자체를 말살하려는 시도는 국민들을 단순 무식자들로 만들어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정치와 종교의 분리 문제를 조심해서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4. 진정한 개신교는 성격상 종교 기관이 될 수 없습니다.
미국을 건설하도록 주춧돌의 역할을 하고 발전하도록 견인차 역할을 한 개신교(protestant)는 종교기관으로써의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나 개인적이고 독립적입니다. 종교 개혁(reformation)을 통하여 태어난 개신교는 종교기관을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과 신앙체험을 통하여 깨달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보아도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프로테스탄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관한 이론들을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정치개혁도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민주주의의 초석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가 민주주의 제도의 가장 중요한 개념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눈에 보이는 교회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직접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이 개신교인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신교가 정치인들과 야합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는 지나친 기우임을 확실히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실질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지금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교회라는 종교 기관을 통해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미국의 선거 결과들을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기독교인들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혹시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면
그 정당이 추구하는 미래와 갖고 있는
가치관과 국가관이 기독교인들의 꿈과 가치관이나 국가관과 일치하기 때문이지 그 정당 자체를 통하여 교회가 어떤 혜택을 기대하거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투표를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단지 기독교인들이 단합하여 투표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풍길 때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어떤 기독교 지도자의 권고를 따라서 무조건 그렇게 하기보다는 신앙적으로 보고 배운 진리를 근거로 하여 선거 이슈나 인물들을 분석하고 분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들이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본래부터 정치인들과 야합하여 세력을 떨치려는 이익집단이 될 수 없는 구조적이고 성격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과 희생을 원리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 단체는 더 이상 기독교 단체가 아닌 것입니다. 또한 자칭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무리들을 보면서 기독교인으로
오인하여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기독교에 경계심을 품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별별 사람들이 자기가 기독교인 중의 기독교인 것처럼 떠들면서 사기행각도 벌이고, 권세도 얻어 보려하고, 덕택에 신용도 얻어 보려하고, 이름을 세상에서 뽐내 보려고 노력해 오곤 했습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기독교와는 무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인 줄 알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이익단체나 세상에 난무하는 온갖 극단적인 미친 짓을 행하는 집단들을 기독교 계통인 것으로 잘못 알고 의심하면서 기독교가 정치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둥의 쓸데없는 논리를 펴는 것은 스스로 무식한 줄 알고 창피해 해야 합니다. 이런 무책임한 판단과 주장들은 미국의 국가 이익에 하나도 도움이 될 것이 없을뿐더러 도리어 감수해야 할 손해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무조건 종교와 정치의 분리만을 외치는 어리석은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5. 정치에서 경계해야 할 위험 요소가 있습니다. 잘못된 사상입니다.
꽤 많은 무지한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만 옳은 진리라고 주장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만 옳다"라는 생각이 가정과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9/11사태도 그런 이유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즉 종교인들이 가진
"우리만이 옳고 남들은 다
틀렸다"고 하는 편협한 생각이 급기야는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자살테러로 발전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서로 자기 것만이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고 상대의 주장도 인정해 줄 때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믿는 것만 옳다는 생각을 버릴 때 평화로울 수 있다는 생각은 단순하고도 너무 순진하고 어린아이 같은 발상입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진짜 문제는 올바른 진리를 소유하고 있지 못한데 있습니다. 자살테러로 미국인들을 죽인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이 천국에 가면 70명의 처녀들과 부족함 없이 사는
호화스런 생활이 보장되어 있는 줄로 잘못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무식함과 이기적 욕망이 끔찍한 사건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진리와 평화와 깨끗함을 외쳤지만, 실상은 남에게 고통을 주면서 자기만 천국에 가서 평화롭게 지내려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어리석은 욕망을 품은 사람의 미신적 행태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속에 진리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진리 대신에 그들의 마음속에는 지배욕, 권세욕, 명예욕, 미움, 분쟁, 술수와 같은 "욕심과 오만과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독실한
이슬람 교인으로써 "진리"를 따르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주장 했고, 또 일견 그렇게 보이기도 했지만, 실은 잘못 유입된 “나쁜 사상”과 “인간적 욕심”이 저들로 하여금 상상하기도 힘든 악한 일을 저지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위험한 것은 종교라기보다는, 인간이 가진 이기적인 본성과 그 이기심을 정당화시키는 나쁜 사상들입니다. 지금은, 특히 미국과 같은 발전된 지식인 사회에서는 종교 자체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욕심과 오해와 무지에 의해서 형성된 “불건전한 사상”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진단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의 종교적 신념이 일반적인 철학사상의 영향력보다 강하다고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신도들과 하나님을 안 믿었던 공산주의 사상가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누가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했습니까? 신자들이 아니라 잘못된 사상을 가졌던 비신자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틀러가 종교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북한의 김일성이 종교인입니까? 아닙니다. 오클라호마 주의 연방 정부 청사를 폭파시켜서 수도 없이 많은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을 희생시킨 사람이 종교인입니까? 아닙니다.
폭파범 Timothy McVeigh는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었던 Agnosticism에 빠져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빈 라덴과 같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도 신을 믿어서 9.11과 같은 잔인한 테러를 저질렀던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이름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재물도 제도로 학문도 다 좋은 것들이지만, 심령이 망가진 사람에게 들어가면 그 좋은 재료들이 파괴적인 열매를 맺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심령을 강퍅하게 만드는 나쁜 사상들을
경계해야지 좋은 심성을 만들어 주는 종교를 경계하는 것은 또 다른 어리석은 생각일 뿐입니다.
종교와 종교를 빙자한 인간들의 속셈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종교 자체가 정치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보인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종교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굳히려하고, 종교를 이용하여 세력 확장을 하려하고, 종교를 이용하여 국민들을 통치하려했던
인간들의 계획된 속셈이 순수한 종교를
대신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나쁜 사상을 막기 위해서 종교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종교가 나쁜 사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좋은 사상을 만들어 주고, 나쁜 사상이 발생되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독일의 기독교가 제대로 역할만 했어도 히틀러 같은 악당이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혹시 나왔다 하더라도
독일 국민들이 그의 말을 듣지 조차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정치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나쁜 사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종교를 무조건 막으려 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국민들이 건전하다고 증명된 종교의 교인들이 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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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2/17/2005 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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