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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성 훈 련, 관 상 기 도, 향 심 기 도

 

 

영성에 관해서

김철호 집사

칼 융 (Carl Jung)

기독교에 심리학적 신비주의 출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

칼 융은 사람의 마음 안에는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는 종교적인 그리고 신비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뉴에이지나 사도교의 신비주의적인 가르침에 어느 정도 과학적인 설명을 붙일 수 있도록 만들어 줌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데 칼융의 집단무의식 이론이 일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원형 (Archetype), 그림자 (Shadow), 아니마 (Anima), 아니무스 (Animus) 등 반기독교적인 개념들을 세상에 소개했습니다. 또 칼 융은 카톨릭의 신비주의에도 흥미를 느껴서 신비주의자 이그나셔스 로욜라에 대한 세미나도 주관하는 등 우리의 신앙 초점을 주님으로부터 우리자신에게 돌리게 했습니다.

융의 심리학의 절대추종자들 (몰튼 켈시, 쟌 샌포드 등)은 의 칼 융의 제일 큰 업적 중에 하나가 비쥬얼라이제이션 (visualization, active imagination)이라고 합니다. 이후부터는 짧게 비쥬얼이라고 하겠습니다. 비쥬얼을 하게 되면 집단 무의식 안에 있는 내용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어릴 적 상처, 대인관계, 가족 관계 등 마음의 상처를 돌아볼 수 있고 또 융 자신도 프로이드와 결별한 후 7년 동안 비쥬얼로 자기 자신의 무의식을 여행했다고 하며 그래서 Red Book 이란 책도 출판했다고 하는데 혹자는 그가 7년 동안 정신병을 앓았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무의식 안에는 이미지라는 영이 있고 그 이미지는 생명을 갔고 있고 그 이미지를 “가이드” 라고 분류하고 융 자신도 “빌레몬 (Philemon)” 이란 영적가이드가 명상, channeling등의 행위를 통해서 자기 자신에게 지혜를 더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내적치유를 주장하는 사역자들은 우선 인간 내에 있는 심적 상처가 치유가 안 되면 그 상처들이 폭력, 이간, 질투 등을 야기 시키기 때문에 치유가 꼭 필요하며, 명상을 통해서 예수님을 비쥬얼로 오시게 함으로 인간의 죄, 고통, 실망과 같은 지나간 상처들의 치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유명한 내적 치유자 Rita Bennett 은 실제로 한 여자가 비주얼로 통해서 죄로부터 사함 (구원)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럼 복음말씀은 어떻게 되는지….

융 의 비쥬얼라이제이션은 개신교 교회 안에 “내적치유”라는 이름 포장된 심리학적 신비주의가 교회에 침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도구로 이용되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많은 목사님들 (특히 한국의 대형교회 목회자들 중에 여러 유명한 목사님들이 내적치유, 관상기도를 외치고 있습니다)과 평신도 사역자들이 비쥬얼을 끌어 드리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역자들 중에는 내적치유라는 "기독교"적인 신개념이 (오래 전부터 힌두교, 불교등을 통한 명상, 단, 등의 이름으로 있었지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조차도 모르기 때문에 생각 없이 받아드려 가르치는 분들이 많고, 또 반면에 그 시초가 반 기독교적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도리어 밝히기를 꺼려하는 목회자/사역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한인교회에서 이름을 날리는 리처드 포스터, 달라스 윌라드, 헨리 나웬 등이 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포스터는 비주얼을 통해서 실체 주님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오순절 성경 대학의 마크 벌클러 교수는 자신은 보수쪽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아무튼 몰튼 켈시의 내적치유 개념이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향심기도를 통한 비쥬얼에서 주님과 대화하고 말씀을 듣고 주님에게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또 내적치유의 관한 많은 저서를 낸 몰튼 켈시, 쟌 샌포드 등이 융사상에 숭배자였던 사실도 기억하셔야합니다.

로마서 6장에 6절에서 8절 말씀에 보면 주님은, 비주얼이나 향심/관상 기도가 아닌,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보다 더 확실한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마틴 루터는 말씀을 통해서 오지 않는 영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말씀을 통하지 않고 직접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형제자매들의 “예수”를 어떻게 생각해야할까요? 비쥬얼 수호자들은 자신들의 명상/비쥬얼은 하나님한테서 온 것이고 뉴에이지의 비쥬얼은 사탄의 것 이라고 하지만 사탄은 교활하고 지혜로워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으면 믿는 자라도 진위를 가리기 어렵도록 "내적치유"를 기독교적으로 포장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내적치유” 또는 심리학적 신비주의는 현재 모든 교단에 침투했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래 기름에 불 붓듯이 퍼지는 목적의 삶, 긍정의 힘 같은 운동의 기본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계층으로 더욱 빠르게 확산 되가는데 한 교회에서 오랜 동안 섬기던 성도님들과 말씀지향적인 믿음을 갖고 있던 성도들이 교회에서 쫓겨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칼 융은 심리학뿐만 아니라 고대연금술, 점성술, 심령술등 이단적인 행위에 심취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불교처럼 하나님과 천국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신영지주의자였으면서 뉴에이지의 아버지라고도 불렸습니다.

참 "영성" 이란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며 고난이 있건 없건 매사에 주님에 은혜에 감사하며 살려고 하는 성향이 아닐까요?

 

3/26/2007   김 철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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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사야 55:9>

"For [as] the heavens are higher than the earth,

So are My ways higher than your ways,

And My thoughts than your thoughts.


 

댓글 1

요즈음 관상기도 세미나에 참석하라는 (광고)편지를 꽤 많이 받고 있던 차에 (김철호) 집사님의 글을 읽다보니 저도 모르게 왜 이와 같이 잘못된 세상적 발상들이 기독교 신자들의 기도 생활에까지 깊숙이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다가 몇 자 적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나,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나, 모든 것이 순간순간마다 성령님의 온전한 역사에 의해서 주어지는 결과들임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통하지 않고 인간이 직접 대화하고, 인간이 직접 응답 받으려는 시도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에게는 직접 신과 통할 수 있는 기능들이 내재되어 있다고 믿고, 인간 자신이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영적 세계에 몰입하려고 애쓰면 언제라도 하나님과 교통이 가능하고, 하나님과 비슷한 지능과 하나님과 비슷한 신통력이 인간들 속에 내재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연습을 하면 그런 기능들을 다시 살려내고 활성화 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는데서 발생하는 인간들의 일반적 오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응답 받으려는 마음보다 말씀대로 순종하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이시지 하늘에 둥둥 떠계시는 신선이 아니십니다. 응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소위 은혜에 잠겨서,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예수님과 함께 구름 속에 둥둥 떠 있으면서 “기도시간이 너무 좋아요”하고 고백하며 행복에 도취 되어 있으려한다면 큰 착각이지요. 일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응답 받는 우리들에게도 “들은 대로 행하라! 믿음대로 행하라! 본대로 행하라!”를 요구하시는 것이고, 그래서 응답받고 행하면서 보호받고 능력 받아서 계속 움직여야 가라앉지 않고 떠 있으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또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평화롭게 가만있으면 좋겠지만, 실질적으로는 평안하다 하는 순간 사단이 들어 올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순종은 하지 않으면서 관상기도나 향심기도 방법을 터득하여 기도시간만을 즐기려 한다면 대단히 위험한 지경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은혜로 생각하기보다는 신앙 수준의 척도로 보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나는 이 정도 수준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직접 대화하고 직접 응답 받는 것 자체를 자랑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비슷한 위치와 수준에 도달한 것처럼 자랑하고, 일반적인 성도들보다 머리 위쯤 크고 ……. 이런 것들이 인간의 죄성에서 나오는 현상들이 아니겠습니까? 응답 받는 것은 인간이 잘나서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도를 많이 쌓아도 하나님이 안 주시는 응답을 인간이 받아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에 응답 받은 것이 인간 편에서 터득한 능력처럼 여기는 것 자체가 너무 어이없는 미련하고 무식한 자세이고 또한 자랑거리로 삼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여튼 자랑까지는 안가더라도 어떤 사람이건 응답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경지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기도는 항상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처럼, 아내가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예수님이 권고해 주신 내용이지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어렵고 난해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부모로써 자식과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은 말할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인간 쪽에서 기도하겠다고만 하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사울왕 같은 경우는 기도했지만,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하나님은 응답 안 해 주셨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법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태도와 인생살이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기도하는데 특별한 방법이나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고,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지요 (눅 11:1). 그리고 이 요청을 받은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 이것이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즉 기도의 내용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지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고, 내용 속에 포함된 하나님을 믿는 마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순종하려는 태도, 하나님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는 신앙목표, 일용한 양식으로 감사하는 믿음, 도움을 바라는 겸손함과 하나님을 높여 드리려는 간절한 마음 자세 같은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지 말씀드리는 것이 기도지요.

세운돌 식구 여러분들! 아무쪼록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솔직하게 진지하게 열심히 기도하시고 승리하셔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3/27/2007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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