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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자녀들을 신앙인으로 양육시킬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김동호 목사님은 “아이들의 기분과 취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주장일 것입니다. 자녀들을 교육시키려면 자녀들과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녀들의 마음이 열려야 하고,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일단 자녀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취지의 권면인 것 같습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씀처럼 들리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목사님의 교육에 대한 권고가 왜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논의해보고, 그 다음에 기분과 취향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성경의 해석과 해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아이들의 기분과 취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엉뚱한 처방인 것 같습니다. 인간의 기분이나 취향에 대한 집착과 추구는 근본적으로 아이나 어른이나 동일한 것이기에 어른들이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부모가 자녀의 기분이나 취향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줌으로 자녀들의 마음을 열도록 하자고 하는 것이 김 목사님의 궁극적 취지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타고난 죄의 소욕들을 실질적으로 대면해본
분들은 이론과 실제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아실 것입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여 바람직한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는 사실을 이미 절감하셨을 것입니다. 취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좋게 말해서 취향이고 일반적으로 말하면 개인적 욕구에 대한 추구입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각자 자기가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이 있고 흥미 있어 하는 다양한 분야들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분야에 차이가 있지만, 사람에 따라 많이 다를 수도 있고, 어른들과 아이들의 취향이 어느 정도 다른 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취향에 대하여도 어른들이 특별히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알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어른들도 과거에는 아이들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취향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고,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고, 취향의 변화과정도 겪어 보았을 것입니다. 한 때에 있었다가 나중에는 버리거나 포기한 특정한 취향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 믿기 전에는 이런저런 취향을 가졌었는데 성장하면서 또는 예수 믿고 나서 취향의 방향과 내용이 변화된 경험을 하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즉 어른들도 각자 나름대로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또 한 때는 특정한 취향을 가졌든 적도 있었고, 취향에 대한 끌림과 성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각별한 노력 없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항입니다. 또한 노력하는 모습이 자녀들의 마음을 열게 만들고 부모님의 조언을 받아드리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 것도 실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모님의 이해해 주려는 노력보다 취향에 대한 자녀들의 욕구가 더 강할 경우에는 그 노력의 대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요약해서 말하면, 기분과 취향을 이해해 주려는 노력을 문제 해결의 열쇠로
보는 것은 너무 치우친 감성적 접근방법으로서 비현실적 의견제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 자녀들을 교육시킬 기회를 아예 갖지 못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교육의 기회를 만들기 위하여 먼저 이해해 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자녀들이 교육을 받을 상황과 받을 만한 마음 상태가 되어야만 교육이 가능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대단히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이 자신들이 듣고 싶을 때에만 가르쳐주고, 기분 좋을 때만 책망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건 피교육자의 자세가 전혀 아닙니다. 물론 때와 상황을 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교육의 기회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교육이 가능해야 올바른 교육을 시킬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으로는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신 6:7)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즉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가르치는 것을 멈추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부모님들이 우선적으로 자녀의 기분부터 이해해 주면서 교육시킬 기회를 찾아야 한다면, 부모님은 그런 기회를 거의 찾을 수 없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 아이는 어른으로 성장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헤아릴 줄을 모르는 영적 철부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분의 인정은 대인관계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기분이란 완전히 혼자서 내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기분에 영향을 받는 상대방이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의 기분만을 생각하면서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기분을 이해해 주기 바라는 자는 재앙 자체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즐기는 취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취향을 고집하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주(Lord)와 구세주(Savior)로 받아드리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세상 취향을 이해해 주기보다는 영적인 방향으로
눈을 돌리게 해 줌으로 하늘나라에 필요한 은사와 사명에 관심을 갖도록 지도해 주고, 은사를 더 다듬고 발전시켜 하나님 나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인물로 양육시켜야 합니다. 기분보다는 가치와 보람을 그리고 취향보다는 은사를 추구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가르칠 일이 아니고 언제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서도 지속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 4:2a).
세 번째로 기분이나 취향으로 인하여 잘못된 행실의 문제를 짚어주지 못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남학생의 귀걸이 착용과 같은 것은 기분과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행실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사실 남학생이 귀걸이를 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인가요? 그리고 하나님보시기에 좋다는 확신이 있으십니까? 행실이나 성격의 문제는 이해해주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보면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해해 주는 것으로 끝내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는 말입니다. 교회나 사회에서는 이미 합당한
행실의 형태와 범위 또 용납되고 안 되고의 범위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되고, 저런 때는 저렇게 해야 되는 합당한 행실들이 교회나 사회적 규범으로 이미 어느 정도 확정되어 존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행실들을 일단은 교회에 출석하면서 또 사회에 나가기 전에 미리 배워서, 즉 부모님의 곁을 떠나가기 전까지 확실하게 습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깨끗한 행실”이라고 표현된 바람직한 행실이 있음을 당연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 행실을 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시 119:9). 깨끗한 행실, 곧 올바른 행실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실행에 옮겨보고 책망을 받고 고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이해해 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만 하면 나중에 후회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따라서 기분을 이해해 주는 것에 시간과 힘을 낭비하지 마시고, 여러 가지 경우들을 대비하여 합당한 행실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미리 가르쳐주고, 고쳐주고, 연습시킨 다음에 사회에 내보내는 것이 부모님들의
의무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녀들의 기분이나 취향을 생각해 주느라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자녀들이 아무리 듣기 싫어하는 것 같아도 감정적으로 대하지 마시고 참고 또 가르쳐 주는 충성스런 부모님들이 되셔야 합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 4:2b).
네 번째로 지적해야 할 점은 부모님들에게 인간 이상의 능력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의 부족한 점이나 잘못된 점을 깨닫도록 도와줄 수는 있어도 깨닫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특히 신앙 면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부모님은 성령의 도구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은 말해주고, 가르쳐주고, 책망하고, 칭찬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징계를 내릴 수도 있지만, 깨닫게 만들 수 있고 심령 상태를 바꿀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 하나님일 뿐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6-7). 심령상태가 그렇습니다. 심령이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인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가 주체가 되어 자녀들의 기분과 취향을 이해해 주면서 그때그때 상황과 특성에 따른 맞춤식 해법을 사용하여 자녀들을 교육시키면 될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인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비현실적 이론입니다. 부모에게 하나님의 역할까지 맡아 수행 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까지 맡아서 전전긍긍하지 마시고, 맡겨진 일에 전심으로 충성하시는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자기중심적 태도”가 문제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분이나 취향을 알아주기 바라는 자녀의 근본 문제는 ‘자기중심적 태도“인 것입니다. 중심이 자신에게 쏠려있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맞추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맞추어 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회사나 또는 밖에서 언짢은 일이 발생한 것으로 인하여, 집에 들어오자마자 영문 모르고 반가워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난데없이 화를 내면서 엉뚱한
것에 화풀이를 하시는 분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자기 기분을 알아주기 바라는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지 않을까요? 혹시 주중에 아빠 얼굴도 보지 못하여 주말이 오기만 기다렸는데, 주말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더니 골프를 치러 나가는 바람에 아내와 아이들을 실망시키는 분들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자기의 취향을 중시하다보면 이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자기중심적 삶은 본인과 주위 사람들을 모두 허망하게 만들고 슬프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 유일한 해결방법은 ’중심‘이 이동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적으로 먼저 생각하는 태도, 다른 사람도 생각해 줄 줄 아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형제자매들과 이웃을 섬기겠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녀의 기분과 취향을 알아주면 자녀들을 교육 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권면은 실질적으로는 ’자기중심적인‘ 문제아를 만드는 위험한 방법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몇 가지로 살펴 본 것처럼 부모가 자녀들의 기분과 취향을
이해해 주는 것이 올바른 교육방법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러면 자녀교육을 올바로 시키기 위해서 부모님들이 알아야 할 성경적 사실들과 취해야 할 성경적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선적으로 부모님이 알아야 할 사실은 마음을 만들고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모를 비롯한 어떤 누구도 자녀들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움직이거나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움 없이 부모님이 직접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부터 깨닫고 인정해야 됩니다. 그러면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첫째로 부모님들은 믿음으로 성령님의 충실한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선 부모님들은 성령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과 능력을 믿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어야 됩니다. 주님은 행함으로 확인되는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즉 주님의 성실하심과 신실하심을 과연 믿고 있는지 확인해 보실 때, 합당한 행함으로 믿음이 확인되면 능력을 베풀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흉악한 귀신들려 고생하던 가나안 여인의 딸이 어떻게 치료함을 받았습니까? 주님의 계속되는 침묵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성실하심과
신실하심을 믿고 끝까지 끈질기게 붙잡았기에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마 15:28) 하시면서 능력을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린 친구들의 행함이 뒷받침된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소경 바디메오가 주위 사람들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애타게 부르며 찾는 행함이 동반되는 믿음을 보시고 가던 길을 멈추시고 부르셔서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건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해 보겠다고 나서지 마시고 기본적으로 주님을 붙들고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고 아들 예수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마리아는 포기하지 않고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라고 믿음으로 명했고, 하인들은 순종했고, 그 결과 마침내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겠다고 마음먹고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착실히 하고 있으면, 주님께서 주님만 하실 수 있는 소중한 일들을 감당해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진실하고 솔직해야 합니다. 특별한 교육적 테크닉을 알고 익히는 것보다 더 강력한 것은 진실함과 솔직함의 힘입니다. 부모님이 진실하고 솔직해야 성령께서도 자유롭게 일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은 진실한 사람의 말이 받아드려지게 되어있습니다. 자녀들에게 기분과 취향을 이해해주려 노력한다는 점을 보여주려 너무 애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지혜롭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진실하고 솔직한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하시는 성령께서 마음껏
일하실 수 있도록 성령의 지시를 충성스럽게 따라야 합니다. 기도도 없이 쓸데없이 생각나는 대로 앞장서거나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함으로 성령님을 물리쳐버리는 일이 일어나면 안 됩니다. 불필요하게 나서서 얕은 수를 쓰거나 대충 넘어가려하면 분명히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때는, 거대하고 견고한 여리고성도 맥없이 무너져 내렸지만, 자신의 능력만 믿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싸우러 나아갔던 이스라엘 군대는 조그마한 아이성 사람들에게 처참하게 패했던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기분과 취향을 이해해 주려는 노력을
보여줌으로 마음을 열게 만들고 결국은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만들겠다는 것은 인간적인 방법이지 하나님을 섬기는 청지기의 진실한 자세는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충성스러운 심부름꾼이 되겠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자녀들의 마음을 사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주께서 시키는 대로 순종만 하십시오. 나머지는 성령께서 알아서 하실 줄 믿으시고, 가르치라고 하는 것들은 때를 얻든 못 얻든 충실하게 가르치고, 보여 줄 것을 보여주고, 기도 하라는 대로 열심히 기도하는 길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들의 자녀를
사랑하는 정도보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자녀를 사랑하는 사랑의 정도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믿고, 충실한 종의 자세를 가지고 솔직하고 진실하게 자녀들을 대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자녀들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는 성령님의 눈과 귀와 입이 되셔야 합니다. 모범을 못 보인다고 가르치지 못하는 것은 겸손도 아니고 교만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고 충성입니다. 또한 정상적인 자녀들이라면 부모님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완벽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은 부족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꼭 해주어야 할 말씀들은 기도하면서 해 주시는 것이 충성입니다. 성령님은 부모님의 입과 눈과 귀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 주는 가운데 내 기분이나 취향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과 예수님의 귀와 예수님의 마음과 뜻을 먼저 의식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면서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신앙교육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로써 자녀들의 기분과 취향을 이해해 주고 싶으신 마음이 많이 있더라도, 그 만큼 더 예수님의 심정을 알려 주는 것에 노력을 쏟을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나’에게서 ‘예수님’에게로 중심을 바꾸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다는 뜻입니다. 자녀들이 믿음을 갖기 원하신다면 교회 나가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나의 기분이나 소원이나 내가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이 결국은 나 자신을 파멸로 몰고 들어가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따라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성령의 소욕을 따르라고 하신 말씀이나 예수를 믿고 따르라는 말씀도 결국은 동일한 말씀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즉 내 기분과 취향이 내용적으로는 나쁠 것이 없다 하더라도 기분과 취향을 추구하는 성향 자체가 결국은 육체의 소욕을 따르도록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돌이켜서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따르는 사람, 즉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삶입니다. 부모님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눈과 입이 되어 자녀들이 자신들의 실상을 볼 수 있게 해 주고 들을 수 있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의 눈으로 자신을 보고, 부모님의 입을 통하여 나오는 예수의 말씀들을 듣고, 행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는 책임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넷째로 부모님들은 교회와 사회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필요한 것은 일반 청소년들의 문화나 사고방식보다 더 깊이가 있어야 하고, 더 구체적이어야 하고, 더 광범위해야 하고, 더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또래들 속에서는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보여줄 수 있는 인도자들이 되셔야 합니다. 불필요하게 부모님이 청소년들을 이해한답시고, 청소년들의 눈높이로 맞추겠다고 청소년들처럼 최신 유행가를 부르고, 유행하는 춤을 추고, 유행하는 언어를 쓰고, 유행하는 복장을
하고 청소년들에게 다가갈 때 청소년들이 마음 문을 열고 받아 줄 것으로 예상한다면 아마도 틀림없이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목회자들이나 청소년 인도자들이 청소년 복장을 하고 청소년 안경을 쓰고 청소년처럼 말하고 때로는 맥주나 막걸리도 함께 마시면서 인기도 많이 누리고 청소년들을 많이 모으기도 했지만 지금 그들이 맺은 열매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모습은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이 늘 접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문화일 뿐입니다. 부모가 특별히 보여주지 않아도 청소년들이 상시 접하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현재의 청소년들은
또래중심문화 속에서 자란 세대들입니다. 학교 공부는 물론 또래중심이고, 교회의 예배도 분반 공부도 또래중심이고, 가정에서도 몸만 집에 있을 뿐이지 마음은 소셜미디어로 바깥에 있는 또래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온 친척친지들이 모인 모임에서도 또래의 사촌들끼리만 지내다 돌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윗세대나 아랫세대의 문화가 어색하게 느껴지게 되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기또래의 시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들의 시선만을 의식하며 살게 되어있고, 자기또래의 평가와 관심이 제일 중요하고 그것이 전부인줄 아는 세대입니다.
특히 남자 아이들인 경우 윗세대인 어른들의 칭찬을 듣게 되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창피하게 생각하고 충격으로 받아드리는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또래중심문화의 교육이 만들어낸 부정적 반응이지 정상적인 반응은 아닙니다. 이렇기 때문에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전부 섞여 있는 교회에서와 사회에서의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부모님들이 교인들과 사회인의 관점에서 전달해 주는 모습과 관점과 조언들은 보약과 같은 중요한 필수 영양제인 것입니다.
가정이란 작은 규모의 사회입니다. 가정생활을 통하여 사회생활의 거의 모든 핵심적 기본분야에 대하여 배우고 훈련받으면서 숙달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과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교육의 핵심 수행자들은 부모님들입니다. 과거에 애플을 창립한 스티브잡스는 “많은 경우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A lot of times, people don’t know what they want
until you show it to them.)” 이라고 말한 것으로 꽤 유명합니다. 그가 말한 것은 신제품에 관한 이야기지만, 이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 자녀들입니다. 사회경험이 부족한 자녀들은 아직 자신들이 무엇이 장차 필요할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필요를 직접 몸과 마음으로 배워 알고 계신 부모님들, 즉 전반적인 사회인들의 시각을 잘 아는 부모님들이 부지런히 가르칠 것을 가르쳤느냐 못 가르쳤느냐에 따라서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못 받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부모님의 가르침, 특히 잔소리로 치부되기
쉬운 부모님의 반복적인 가르침이 너무 소중하다는 말입니다. 자녀들은, 정말 듣기 싫어도, 자신들을 잘 이해해 주지 않는 것 같은 부모님의 책망들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사회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이고 시각이고 견해이며 동시에 장차 사회에 나가면 직면하게 될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약은 쓰지만 효과가 있습니다. 부모님의 입이나 표정이나 반응에서 나오는 메시지들은 보약과 같은 것입니다.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들이 듣기 싫어해도 말해주는 것입니다. 원망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심지어 신경질적인 반응을 목도하면서도 또 말해 주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조언이 없어도 스스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철부지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부모님이 말해 주지 않으면 무언의 대다수가 내 말을 듣고, 내 행동을 보고, 내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부모님의 조언 없이는 어떻게 말해야 경우에 합당한 말인지 배울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의 잔소리가 없으면 결국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어 살게 되는 것이고, 언젠가는 자신이 지금까지 벌거벗고 살았는데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해 주는 바람에 자기만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자기가 너무나 세상을 몰랐음을 그제야 알게 될 것이고 또한 귀를 드리지 않았던 것에 무척 후회할 날이 올 겁니다.
들을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주장하기 전에,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 전에 자기 느낌이나 취향을 내세우기 전에 듣는 자세부터 갖추어야 합니다. 어른들 곧 기성세대들도 청소년 시기를 지냈고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욕망과 성령의 소욕 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었던 사람들이고, 사회풍조의 변천과 영향력에 대하여 잘 아는 체험자들이고, 대세의 소용돌이 안에서 대세와 세파와 열풍의 힘이 얼마나 센지 세상이 주는 압력과 유혹이 얼마나 막강한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껴봤던
사람들이고, 계속해서 한 때의 열풍이 지나고 새로운 대세가 도래하는 것을 때마다 목격했던 실전 경험자들이고, 경쟁관계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시달려 본 체험자들이고, 나름대로의 깨달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에 버금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른들은 청소년의 마음을 이해 못한다?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물론 청년들 사이에서 새롭게 유행하는 내용 자체에 대하여는 생소할 수밖에 없고 또 호감도도 당연히 낮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때의 소용돌이로 끝날 문제인지, 아니면 장차 맞이하게 될 새롭고 긍정적인 추세인지에 대한 분별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고, 시대적 열풍의 막강한 힘과 헛된 결말에 대하여는 청년들보다 훨씬 더 잘 알지요! 그래서 자녀들과 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지금 그렇게도 몰입해 있는 문제가 시간이 지나면 정말 헛되고 헛된 것으로 여겨질 것도 알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날이 올 것을 알기 때문에, 또 순수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정말 생각처럼 순수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을 미리 알기 때문에, 지금 뒤처질지 모른다는 염려가 나중에 도리어 잘 된 것임을 깨닫는 날이 올 가능성이 많음을 알기에, 그리고 나중에 그렇게 확신에
차 있었던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생각이 모자랐음을 깨닫는 날이 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씨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추세, 세상의 대세에 떠밀려가는 것의 위험성을 미리 권고해 주는 것이 왜 잘못된 것입니까? 물론 경험을 통하여 나중에 깨닫게 될 것이지만, 직접 경험하기 전에 미리 배우고 믿고 권고를 받아드려 순응하며 사는 것이 지혜이고, 경고와 충고를 무시하다가 결국은 허무함과 어려움을 당하고야 마는 것이 어리석음이고 미련함입니다.
말없이 참고 기다려 주는 것과 내버려 두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때때로 부모님들은 청년들이 스스로 합당하게 행동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잠잠히 기다려 줄 필요가 물론 확실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문제될 것도 없기 때문에 놔두고 기다려주는 것과, 잘못된 행동을 고쳐주기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기도하며 참고 기다려주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만약 교육의 일환으로 잠잠히 참고 말없이 기다려주는 것이라면 그 특정한 문제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계시더라도,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을 면밀히 파악하여 그 해당 사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경에는 어떤 말씀이 있는지 미리 살펴보고 준비해 놓고 기도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될 때 그 동안 준비했던 메시지를 전달해 줌으로서 잠깐이라도 잘못 생각했고 잘못 선택했던 부분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실전 현장에서 직접 뒤돌아 평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받은 메시지를 잊지 않도록 기억 창고 안에 확실하게 넣어 줌으로, 비록 그 자리에서 당장 고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다음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있도록
이정표를 세워 주는 부모님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냥 상관하지 않고 이해해 주면서 스스로 올바른 길로 갈 것을 기다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이해해 주는 것은 교육을 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지 이해해 주는 것 자체가 교육을 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교육이라는 과정도 없이 저절로 잘 알아서 올바른 길로 갈 능력이 없는 존재임을 아셔야 합니다. 정말로 그럴 수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실 필요도 없으셨고,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으실 필요도 전혀 없으셨을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 깨달음에 의해서
알아서 올바른 길로 갈 능력은 처음부터 상실된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고, 스스로 혼자서 올바른 길,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로 찾아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따르라고 간절히 권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언제나 끊임없이 교육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을 많이 해야만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말을 안 하고 못 본척하고 묵묵히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것도 좋은 교육일 수 있고, 믿을 수 없지만 믿어주는 것도 효과적인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 없이 그냥
무턱대고 미련스럽게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 잠잠히 기다리는 동안에라도, 믿어주고 바라만 보면서도 전달해 줄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고 간절한 기도로 중보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길 줄 아는 부모님들이 되셔야 합니다.
청소년 시기는 너무나 소중한 기간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습득할 수 있는 귀중한 시기입니다. 부모님들은 그것을 몸과 마음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올바른 가이드라인을 주려고 하는 거의 유일한 헌신된 인도자들입니다. 물론 부모님들 중에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자녀들에게 강요하는 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몇몇 잘못된 부모님들 때문에 대다수의 부모님들도 그럴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더 잘못된 태도입니다. 만약 부모님들을 자녀교육에서
제외시키거나 역할을 축소시키려한다면, 자녀교육은 누구에게 맡길 것입니까? 부모님보다 더 헌신적이고 더 지혜롭게 잘 가르칠 사람이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부모의 기도와 가르침이 중요합니다. 부모님들은 우선적으로 자녀를 자기의 기분이나 취향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웃들의 처지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양육시켜야 합니다. 동시에 청소년들은 부모님 밑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순종적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모님들은
책임의식을 갖고 부지런히 가르쳐 줄 것들을 가르쳐 주시고, 자녀들은 언제 어디서나 순종적인 자세로 배우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려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5-16).
▶ 1. 서론: 칼럼 요약
▶ 2. 외모는 신앙생활의 한 요소입니다.
▶ 3. 가정과 사회는 다스리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 4.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옳은 주장입니까?
▶ 5.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되어야 큰일도 할 수 있습니다.
▶ 6. 아이들의 기분과 취향을 얼마나 존중해 주어야 합니까?
▶ 7. 결론: 신앙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1/20/2021 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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