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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을 평소에 생활하는 가운데서 교육을 통하여 또 생활 속에서 알게 해 주었으면, 그 다음 단계가 ”거룩한 삶”을 스스로 택할 수 있도록 ”거룩한 삶”에 대한 특권과 의무를 가르쳐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신앙생활의 기쁨을 맛보기는커녕 모든 신앙생활이 고난의 행군과 같이 느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특권임을 실감하는 깨달음 속에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과 자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있고, 이것이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의 참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곧 거룩한 사람이다”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자녀들도 그런 자부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밖으로 떠드는 자랑이 아니라, 마음속이 긍지와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진 은근한 자부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말하면 “거룩함”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또한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 19:6). 이 메시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살고 있었던 많은 백성들 중에서 이스라엘 가족들만 특별히 뽑으셔서 구별하셨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 주셨고, 그렇기 때문에 뽑은 백성들에게만 요구되는 특별한 삶의 지침을 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지침대로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거룩한 백성으로써의 특성을 유지하고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즉 거룩한 백성으로 뽑으셨기에 특별한 법과 규례들을 주는 것이고 그 법과 규례들을 준수할
때, 백성들의 거룩함을 계속유지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해 주신 것이었고, 백성들은 그 메시지를 감사함과 환희로 받아드렸던 것입니다. 사실 아직도 많은 정통파 유대인들은 선민이라는 것과 율법을 받은 백성이라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김동호 목사님의 가정교육 내용 안에, 거룩함의 요구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교육이 아예 없었거나 적어도 심히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나 의심됩니다. 왜냐하면 “귀걸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몇 달 전이었을 수도 있고 1년 전이었을 수도 있다”라고 본인이 유추하셨습니다. 목사님의 큰 아들 말처럼 남자 귀걸이 착용이 그 당시의 패션과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또한 이 아들의 귀걸이 착용은 잠시 동안 일시적으로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착용 기간의 길고 짧음을 불문하고 또 하나의 패션이건 아니건 관계없이, 거룩한 삶에 대한 긍지가 부족했기 때문에 일어났던 현상이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거룩한 삶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무리 남자용 귀걸이가 유행을 하고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치더라도, 친구들이 모두 귀걸이를 하고 다니었더라도, 도리어 자기는 귀걸이를 안했다는 것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거룩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다운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에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정상적인 믿음생활, 즉 거룩한 삶이고 참다운 신앙생활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죄가 하나도 없는 깨끗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 또는 “구별되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다르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제약들과 함께 내포된 엄청난 특권과 복을 의미하는 다름입니다. 예를 들면, 왕자와 평민과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왕자라는 신분과 위치로 인하여 평민들은 경험해 볼 수
없는 막중한 책임뿐만 아니라 엄격한 행동 규율이나 불편한 예복의 착용과 같은 어려움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왕자다워야 된다는 요구사항이 부분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럽고 힘든 점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왕자에게 있어서 평민과의 “다름”은 세상에 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특권이며 자산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해야 한다, 즉 신자다워야 한다.”라는 요구사항이 부담스러운 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녀라는 신분을 가진 자들이 지켜야 할 규율이나 행동규범은 받은
복과 누리는 특권에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사항들인 것입니다. 거룩함을 부담스러워하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 자녀라는 위치와 천국시민이라는 신분”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르는 무지함 때문인 것입니다. 거룩한 삶이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고 복인지 모릅니다.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복중의 복인 것이고, 왕자가 평민들을 상대로 느끼는 “다름”과는 사실상 비교조차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만물들을 다스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던 에서에 대하여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히 12:16)라고 경고해 주셨습니다. 거룩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지하여 거룩하게 사는 것을 경홀히 여기면 이미 받은 복도 다 잃어버리게 되어 결국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3)라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수께서 미리 경고해 주셨음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평민은 왕자가 아무리 되고 싶어도 왕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왕자의 위치에 있는 자가 스스로 평민이 되겠다고 고집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사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부지런히 가르쳐 주십시오! 너무나 귀한 장자의 명분을 죽 한 그릇에 팔아먹고 장자의 신분을 빼앗긴 에서처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세상의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들”과 바꾸어 뺏기지 말라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7)라는 말씀처럼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백성들이 망하는 이유가 바로 무지와 무식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개탄했습니다.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거룩하라!”는 명령이 얼마나 합리적인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큰 특권인지 가르쳐 주셔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신 복을 누릴 줄 아는 자녀들로 양육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거룩함은 구약 성경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의 기본지침이기도 합니다. 거룩함을 구약의 낡은 사고방식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받으면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지고,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면 “거룩”해진 것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도 로마에 있는 교우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의 삶 자체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냥 ”산 제사“가 아니라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한 것, 즉 세상의 때로 찌들어져 있지 않은 것, 예수님의 피로 씻어지고 정결해진 깨끗한 것만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곧이어 바로 다음구절에서 거룩해지는 실천 사항을 알려 주시는데 먼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Don’t copy the behavior and customs of this world)”고 하셨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세상 행태와 풍습을 따르는 생활을 멈추고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김 동호 목사님과 그분을 따르는 분들은 이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부터 실천에 옮겨야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 세상의 뜻을 따르고 살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와 동일한 뜻의 말씀이 히브리서 12장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Make every effort to live in peace with all men and to be holy; without holiness no one will see the Lord).”라고 하셨습니다. 즉 모든 사람들과
화평하게 지내야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단은 반드시 삶이 거룩해져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주님을 보지 못하리라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무리 성실하고 아무리 정직하고 아무리 예의바르고 부지런하고 아무리 법과 질서를 잘 지켜도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 즉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지시를 받고 순종하는 “구별됨”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동의하는 상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고 순종하여 따르는 거룩한 사고방식과 거룩한 행동이 포함된 말입니다. 즉 믿는 사람이라면 믿는 사람다운 사고방식과 행동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혹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행동은 세상 풍습을 따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은 다하고, 자기생각대로,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섬긴다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분명히 불신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잘 믿는다고 스스로 착각에 빠져있는 “자칭 신도”들에게 미리 경고해 주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거룩한 삶을 살지 않았던
사람은 천국에 들어 올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아무리 크고 많은 일을 했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사람이 아니면 주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자녀들을 혹시 불쌍하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회개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과 관심사가 일반인들과는 확실히 다르게 되어 있고 또 확실하게 달라야 정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거룩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없이 오직 겉으로만 거룩했던 바리새인들처럼 되면 결코 안 되는 것이지만, 반대로 믿는다고 하면서 거룩함이 없는 삶을 살다가 나중에 주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일이 일어나도 마찬가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을 가진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양육시킬 때,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철칙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동시에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필수 교육이고 기본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로 어처구니없이 많은 예수 믿는 부모님들이 자기 자녀들이 예수를 믿기 때문에 또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세상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여기고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세상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해 불만에 찬 자녀들을 어떻게 달래 주어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어리석고 미련하고 한심하고 답답한 부모님들입니다. 만약 믿는다고 하는 부모님들이 자녀들이 세상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가지셨다면 자녀들에게 거룩함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도록 교육시키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거룩함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 원칙에 대하여는 언급조차도 하지 마십시오. 거룩한 생활에 자부심이나 긍지가 없는 아이에게 원칙준수를 강요하면 “눈치나 보는 비겁한 자녀”가 되거나 반대로 “반항하는 자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봅시다! 술이나 담배나 마약이나 연예인들을 모르는 것이 불쌍한 것입니까? 청년이 귀고리 못 걸어본 것이 불쌍한 일입니까? 최신 유행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이 불쌍한 것입니까? 세상의 유행에 영향 받지 않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을 특권과 긍지로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출신학교 자랑하고, 세상에서 이룬 업적을 자랑하고, 자기 외모와 치장을 자랑하는 무리들 속에 속하지 않은 것에 긍지를
가질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자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법과 원칙을 억압이 아닌 감사로 받아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억압으로 받아드리면 비굴해지거나 반항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과는 다른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과 세상 사람들의 삶과 다른 거룩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확인 하신 다음에야 비로소 율법을 돌비에 친히 쓰셔서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가정에서 “삶의 원칙에 엄격한 부모”가 되려면 자녀들로 하여금 일단 거룩한 삶에 대한 긍지를 심어주시고 거룩하게 살아갈 의지를 먼저
길러주셔야 합니다.
▶ 1. 서론: 칼럼 요약
▶ 2. 외모는 신앙생활의 한 요소입니다.
▶ 3. 가정과 사회는 다스리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 4.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옳은 주장입니까?
▶ 5.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되어야 큰일도 할 수 있습니다.
▶ 6. 아이들의 기분과 취향을 얼마나 존중해 주어야 합니까?
▶ 7. 결론: 신앙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1/20/2021 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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