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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정치참여

 

 

성도들부터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마 22:29) 꽤 많은 목회자들이 신자들은 나라를 위하여 기도는 해야 하지만, 정치 참여는 안 되고, 정치적 노선이나 이념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여 논쟁거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하나님의 뜻과 성령님의 능력과 신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혹시 알고 있더라도 개인적인 문제나 교회 사정과 같은 인간적인 문제로 인하여 정치가 논쟁거리가 되는 것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늘어놓는 억지 궤변처럼 들립니다. 확실하고 분명한 것은 성도들이 정치인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성도의 정치참여는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중요한 책무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정교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성도들이 정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정치발전에 관여하고, 정치적 이념 논쟁에 적극 참여하고, 정치적 부패를 사회에 고발하면서 정치의 중심에 서서 이끌어가는 리더들이 되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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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신자들의 정치참여는 기본이요, 상식이요, 필수입니다.

국민이면 누구나 정치에 적극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관여해야 합니다. 정치는 기능면에서 인체의 뇌처럼 모든 기관을 주관하는 대체 불가능의 최상위 기관입니다. 뇌를 대신할 기관이 없는 것처럼, 정치를 대신할 다른 기관이 없기 때문에, 정치는 철저히 보살피고 보호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기관, 예를 들어, 팔이 없으면 그래도 팔 대신 발을 사용하여 불편한 대로 어느 정도 살 수 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뇌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팔다리가 아무리 강하고 멋있게 생겼어도 있는 팔다리마저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지체기능장애인이 되고 마는 것이고, 뇌에 잘못된 사고방식과 사상이 자리를 잡게 되면 공산주의 이념이 도리어 그럴듯하게 여겨지는 이념적 장애인이 되고, 학식을 아무리 많이 쌓았어도 한순간 지적 장애인이 되고야 맙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에 장애가 오면 모든 기관이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정치만큼은 다른 어떤 기관도 그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과학자가 많고 탁월한 경제인들과 숙련공들이 많아도, 아무리 국민들이 성실히 일해도, 학문이 발달했어도, 인간의 뇌에 해당하는 정치가 변질되고 타락하면, 장애국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지금은 아무리 가난하고 보잘것없어도 정치가 정상적으로 건전하게 이루어진다면 그 나라의 장래는 확실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 자체가 의인들이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에 불과합니다. 신자들이라면 적어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성경말씀은 알고 있을 것이고, 정치인들에 대하여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신자들은 예수 믿는 일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인간이 무엇인지,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 정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멍청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믿고 현혹되지 마셔야 합니다. 자유 민주주의에서 정치가 의롭게 이루어지는지 불의로 점철되는지는 정치인들보다는 정치인들을 뽑고 떨어뜨릴 수 있는 국민들이 책임져야 할 몫입니다. 국민들이 우매하여 어리벙벙하면 정치는 난장판으로 변모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민들이 더 똑똑해져야 하고, 지혜와 명철로 무장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철저하게 관리하고 감독해야 비로소 올바른 정치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 일에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신자들임을 아셔야 합니다.

정치는 외면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정치와 함께 정치 속에서 살아갑니다. 정치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치를 외면한다고 정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는 정치를 하게 되어 있고, 또 그 정치인의 다스림을 받거나, 적어도 그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서 삽니다. 따라서 정치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치가 올바로 행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최선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가 제대로 행해질 수 있도록 국민들이 참여하여 눈과 귀가 되어 주어야 하고, 선과 악을 분별해 주어야 하고, 철저히 감시하면서 잘못된 곳이 있으면 바로바로 지적해 주고 고치도록 압력을 행사해 주어야 합니다. 혹시라도 정치인들을 선출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모든 과정에 국민들이 남의 일 보듯이 그냥 방관하면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치인들과 타락한 언론인들에게 휘둘림을 당하거나 속임 당하지 말고, 적극 참여하여 언론까지도 이끌고 나가는 국민들이 되어야합니다.

국민은 누구나 나라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주인 역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주인이 빠지면 사업체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습니다. 자기 집을 아무에게나 무턱대고 내어주고 맡겨놓는 집주인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의 주인이 관리하고 감시하고 보살펴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나라가 국민들에 속해 있지 않고 왕이나 영주들에게 속해 있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오랫동안 왕이나 귀족들이나 영주들로부터 나라의 소유권을 찾아오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마침내 국민들이 주권을 가진 자유민주 공화국이 탄생하게 된 것은 엄청난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는 대가를 치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국민들의 주권 찾기 운동의 중심에 기독교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나라 중의 하나가 기도로 시작한 대한민국이고,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입니다. 예수 믿는 국민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들을 위한 나라, 미국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종교 박해를 피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온 이주민들은 왕이나 특정인들이 아닌, 모든 국민이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원했고, 또 국민들이 주권을 가진 나라를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국민주권주의를 기반으로 자유민주주의 공화정 체제를 구상하게 되었고, 그 열매로 국민 각자가 주인이 되어 세운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은 처음부터 국민이 주권을 가진 나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국민들이 주권을 가진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으로 새롭게 탄생한 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 제도는 주인인 국민들이 빠지고 직업 정치인들에게 그냥 맡기면, 지나가는 행인에게 내 집 열쇠를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그 주인은 자신이 소유했던 집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얼마든지 있는 것처럼, 배반을 밥 먹듯이 하는 배신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이 나라를 무조건 맡긴다면 결국 국민들은 국가의 소유권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개돼지 취급을 받고 노예로 전락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주인의 역할을 감당하느냐 마느냐는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히틀러와 같은 악랄한 독재자도 민주적 선거를 통하여 교묘하게 정권을 잡았고, 국민들은 개돼지 취급을 당해야 했습니다. 정신 차리고 있지 않으면 민주주의 체제가 역이용되어 도리어 민주주의에 의해서 억압당하는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부터 주인 역할을 감당하는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인 하나하나가 이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동시에 국가의 실질적 주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를 믿는 국민들부터 주인 의식을 갖고 신앙의 자유와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책임지고 나서야 합니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정교분리 주장에 현혹되어 속아 넘어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 야심가들에게 정치를 맡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성도들이 정치에서 손을 떼는 순간, 비루한 자들이 정치판을 점령하여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고, 급기야는 복음 전파는커녕 모임 자체도 갖기 힘든 처지가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의 말을 심각하게 들어야 합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인들로 하여금 정치를 외면하게 만드는 목자가 있다면, 그는 참으로 어리석거나 미련하거나 무책임한 삯꾼으로 간주하고 철저히 멀리해야 합니다. 정치는 피하면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길만이 살길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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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은 올바른 정치를 위하여 함께 할 일꾼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있어서 하나님의 손발이 되어 드려야 되고, 이것이 우리의 신앙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신자들은 신앙생활에 전념하라고 권고하시는 목사님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결국 교회 출석하여 예배드리고 성경 읽고, 교제하고, 봉사하고, 헌금 내고, 이웃들을 데리고 오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목표라기보다는 신앙인들의 일상적인 신앙생활로 여겨야 합니다. 마치 사람이 매일 먹고 잠을 자야 생명이 유지되듯이 기도 말씀 찬양 교제 봉사는 신앙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기본 활동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드리는 것"이 성도들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양한 뜻 중에는 국가에 대한 뜻도 포함된 것이고, 그래서 정치도 중요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 이념 논쟁이 싫다고요? 제정신입니까? 이념 논쟁이 싫다고 말하기 전에, 교회 안에서 이념 논쟁이 발생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이념이 다를 수 있습니까?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도 성경도 교회도 예수도 모르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교회가 처음부터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의 문제점을 명확히 지적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고후 6:;14-16). 공산주의자와 신앙인이 어찌 조화되고 어찌 함께 할 수 있습니까? 무지함이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목사님들은 지금부터라도 논쟁이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성경적 이념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셔야 합니다.

정치를 멀리하라거나 이념 논쟁을 피하고 기도만 하라는 등의 권고는 문제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더욱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기도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하라는 것이지, 자신의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기 위해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마25:24) 분으로 알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대신 처리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스스로 감당해야 할 책무를 고스란히 땅에 묻어놓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은 “악하고 게으른 종”의 태도입니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영혼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겁먹고 피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손해를 보더라도 부딪치고 뚫고 나가야 합니다. 언제나 공의와 정의 편에 서서 진리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혹시 정치에 관하여 잘 모른다면, 부끄러워 말고 배우면 됩니다. 분명한 것은 교인들이 올바른 정치적 이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목회자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이지 사람의 일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부름을 받았지, 사람의 일을 하라고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시겠다는 예수님을 붙들고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는 일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목사님들의 침묵과 무사안일주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궤계에 넘어간 것입니다. 분명히 합시다! 신자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드리고, 헌금 내고, 기도하고, 성경 열심히 읽고, 성경 공부에 참석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기본적인 신앙 활동이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수준은 아직 아닙니다. 그것들은 죄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 활동할 수 있게 해 주시기 위하여 주신, 우리를 위한 최소한의 지침들이지 신앙생활의 목적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군인 생활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군대에 입대하면 체력 단련, 사격 훈련, 전술 훈련, 화생방 훈련을 반복적으로 합니다. 이것이 군대 생활입니다. 하지만 군인의 목표는 군대 생활 자체가 아니라,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나라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 자체를 신앙의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정치참여를 멀리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한심하고 어이없는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사람의 일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라의 정치에 대하여 분명한 뜻이 있고 계획이 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께 칭찬받았던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설정한 목적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하나님과 연합하여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드리겠다는 진심 어린 마음과 열정이 있어야 하고, 그런 자세로 일할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이와 같은 일꾼들로 양육하기 위해서, 목사님들께서는 정치문제를 피하는 소극적이고 비겁한 길을 택할 것이 아니라, 신사참배를 단호하게 거부하셨던 주기철 목사님처럼, 목사님들부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치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담대하게 앞장서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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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교분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사무엘상 8장에는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여서 사무엘에게 ‘사사’ 대신 ‘왕’을 달라고 요구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정치와 성직을 겸한 사사가 주도하는 ‘신정정치’를 끝내고 정치만 하는 왕이 주도하는 ‘왕정 정치’를 요청했던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정치와 종교의 분리, 즉 종교를 배제한 왕정 정치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요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삼상 8: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교분리를 외치는 자들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부담스러워하거나 거부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순수한 신앙생활”을 외치지만 ‘순수한 신앙’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엉터리들일 가능성도 크고, 특히 하나님께 간섭받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살면서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어 하는 자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야말로 신앙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복 중의 복’인 것입니다. 정원을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리 아름다운 정원이라도 관리자가 통치, 곧 관리를 안 해주면 잡초가 자라나서 결국에는 잡초 밭으로 변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없으면 우리의 삶은 사단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를 하나님께서 통치해 주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손을 떼는 순간,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것을 멈추시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무질서, 무자비, 갈등과 분쟁, 혼란과 반역, 그리고 그에 따른 환난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하면 나라의 운명은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추측성 이론이나 주장이 아니라, 성경과 역사 기록을 통하여 충분히 증명된 사실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 (호 8:4) 자기들 마음대로 왕을 세운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즉 정치에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배제한 결과가 난국과 파국을 불러왔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 보기에 좋은 대로 왕을 택하더니, 결국 자질이 없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권력에 눈이 어두워진 자들이 왕이 되고, 그런 자가 나라를 통치하니, 국내정세도 국제 정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통치력도 없다보니 결국은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해 주시고 도와주시지 않으면 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지금 마약과 총기로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눈이 열린 사람들은 모든 일의 시작이 기독교를 정치에서 분리하려는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확고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건립되어 큰 복을 받고 누리던 미국이라는 나라가 부강해지더니 급기야는 죄악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성령께서 계셔야 할 자리에 마귀가 자리를 잡고 인간을 쾌락의 세계로 유혹하고 극도의 미움으로 내몰면서 마약과 총기가 활개를 치고 부패한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제시킨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하기로 한 목사님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정치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간절히 간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총력을 기울이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해 달라고 간절히 간구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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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신교는 신정정치와 아예 관련이 없습니다.

혹시 기독교가 정치를 신정체제로 만들까 염려되어 정교 분리를 주장하십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신정정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종교 수장이 최고 권력자가 되어 직접 정치를 하는 것과 기독교 문화와 정신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개신교가 한 일은 기독교 정신에 기반을 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태동시킨 것이고, 신도들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에 참여하여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려 노력할 뿐이지 다른 것은 없습니다. 기독교와 기독교의 역사도 모르는 무식한 자들은 기독교가 정치에 개입하면 신정정치가 되는 것처럼 지레짐작하며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고 있지만, 세계의 역사는 개신교가 전파되는 곳마다 신정주의가 아니라, 오직 자유민주주의가 소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같은 약이라도 환자에게는 약이 좋지만, 건강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고, 질병을 앓고 있을 때는 약이 좋은 것이지만, 건강해지면 약은 끊어야 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와 상황과 대상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정교분리 주장은 신정정치를 하고 있는 이란이나 무함마드를 섬기는 무슬림 국가들에는 유익한 처방이지만, 이미 최고의 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는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치명적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인류가 창안해 낸 정치 체제 중에서 자유민주주의보다 더 좋은 체제가 있었습니까? 이런 자유민주주의를 키운 정신적 뿌리가 개신교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에는 신앙의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정신을 뿌리로 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하여 ‘정교분리 처방’을 하는 것은 건강한 사람에게 약을 억지로 먹이거나 멀쩡한 사람의 몸에 메스를 대는 것처럼, 해를 불러오는 것 외에는 더 득이 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역사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역사를 보면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생기기 이전의 기독교는 오랜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박해와 고난, 아픔을 겪었고, 동시에 깨달음과 겸손, 지혜와 명철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지나면서 기독교 신자들은 신앙의 자유를 갈망했고, 그 바라던 꿈을 이루어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자유민주주의라는 훌륭한 정치 체제입니다. 이와 같이 자유민주주의는 기독교 정신이라는 뿌리를 기반으로 줄기와 가지와 잎을 내고 자라고 열매를 맺으며 성장했습니다. 이것은 나름의 주장이 아니라, 역사 속에 이미 드러나 있는 사실입니다. 개신교가 가는 곳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간단히 말해서 기독교와 자유민주주의는 뿌리와 줄기처럼 연결된 것입니다. 즉 기독교와 자유민주주의는 별개의 다른 개체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 개체라는 말입니다. 즉 기독교라는 뿌리가 제거되면 자유민주주의라는 줄기와 가지와 잎도 서서히 말라 죽어 없어지고, 대신 중국식 민주주의나 인민 민주주의와 같은 이름뿐인 악성 민주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어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개신교와 자유민주주의는 공존할 수밖에 없는 관계입니다. 개신교는 사랑과 성실 공의 같은 기독교정신을 국민들 마음에 심어주고,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신앙의 자유와 집회 및 결사의 자유라는 법과 제도를 지켜지도록 만들어 주면서 서로 함께 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잘 보전하기 위해서 기독교를 배제하려는 시도는 마치 황금알만 얻으려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됨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순순하게 지키기 위해서 정치에서 기독교를 분리하려 하거나, 믿음 생활에 전념하기위해서 정치를 멀리하고 방관하면서 국민주권 행사를 소홀히 하는 자세는 기독교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함께 죽이는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가 실행되려면 기본적으로 기독교 문화와 정신이라는 공감대가 있어야 되고, 기독교도 신앙의 자유를 누리려면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계가 필요하고, 동시에 기독교 없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실현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소수자와 약자도 존중을 받고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강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법의 권위에 순응하기 때문입니다. 강자들이라고, 다수라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법과 제도만으로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법이 지켜지지 않거나 악용되는 것이 문제이지, 공산주의 독재국가에도 분명히 법과 제도가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제도보다 법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법을 존중하고 지키겠다는 마음자세, 곧 준법정신이고, 그 준법정신이 곧 기독교 정신이고 기독교 문화인 것입니다. 즉 기독교 문화와 정신이라는 공통적 토대가 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의 법과 제도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합당한 정치 체제가 있어야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신정정치가 될까 봐 기독교 영향력을 차단하려 하거나, 믿음 생활에 전념해야 하니까 정치를 멀리하겠다는 주장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의 얕은 생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시고 정교분리 주장을 단호히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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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수님의 생애도 정치와 연관이 있습니다.

정치는 기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도 정치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활동이 정치로부터 분리 독립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치적 상황과 깊은 연관성이 있었음을 아셔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임재, 말씀선포, 제자사역, 십자가, 부활, 그리고 복음전파와 같은 모든 과정이 정치와 연관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임재하신 때를 보면 로마가 유대인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자유를 주었고, 특히 유대교를 인정해 준 상태였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로마가 지배하는 세계 질서 아래에서 통제받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즉 유대교 지도자들이 복음 선포나 전파를 그들 마음대로 억제하지 못했던 절묘한 시기에 예수님이 오셨고 공생애를 사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정치 환경이 얼마나 중요했었는지를 알려면 그 당시의 종교적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까지의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모든 민족 가운데서 율법과 할례로 자기들만 구원받았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나 축복도 자기들에게만 한정시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을 받으려면 우선 먼저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는 것이 최우선 순위라고 믿고 있었기에 이방인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달하는 길이 막혀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독립적으로 나라를 통제하고 있었다면 복음이 이스라엘 국경의 범위를 넘지 못하고 이스라엘 내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 천년이 넘도록 굳건하게 세워져 있었던 장벽을 넘어서 세계 여러 민족에게 복음이 전달될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은 ‘로마가 지배하는 정치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즉 로마가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복음이 이방인들에게까지 전달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정치는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성도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었고, 지금도 정치는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곧 생활의 종교이고 세상의 모든 일들에 관여하는 종교입니다. 세상을 등지고 하는 수양이나 명상에 초점을 둔 종교가 아닙니다. 따라서 ‘정치를 배제한 기독교’는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가 아니라 다른 종교입니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애와 죽음이 정치와 연관되어 있었고, 복음 전파도 정치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종교개혁도 정치와 연관되어 진행되었습니다. 몇몇 목회자들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대답하신 말씀을 근거로 정교분리를 주장하고 있는데,이는 잘못된 주장입니다. 즉, 위에 언급된 말씀을 “나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로 해석하는 것은 예수님과 복음과 복음 사역에 대하여 무식하다는 증거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물론 바리새인들이 서로 모의해서 던진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무슨 대답을 하여도 예수를 로마인들이나 유대인 중 적어도 어느 한편에게는 타도의 대상이 되게 만들려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던진 적대적 질문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나오게 만든 배경에는 유대인들의 신앙적 자존심, 정치적 억압으로 인한 서러움,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유대인들의 정치적 염원, 그리고 이런 문제로부터 거리를 두고 계신 예수님께 대한 섭섭함이 함께 뒤엉켜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고 답하신 것은 우선 그들의 음해 시도를 무력화시키는 지혜로운 대답이기도 했지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말씀 안에 로마가 통치하는 정치적 상황을, 유대인들의 시각과는 달리, 부정적으로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긍정적으로 보고 계심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즉 예수님의 관점에서는 로마가 지배하는 정치 환경이 복음을 위해서는 도리어 필요한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말씀은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는 뜻이 전혀 아니고, 도리어 정치의 중요성을 암암리에 알려주신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는 예수님의 사역과 사도바울의 사역을 생각해 보시면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정치에 참여하셨습니다. 어떻게 참여했냐고요? 로마의 이스라엘 지배구조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정치에 관여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독립된 나라였다면 복음 선포와 전파가 가능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복된 말씀이 전달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도 이스라엘만 사랑하려 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세계 여러 민족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되기 원하시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만이 독점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나갔던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우상을 공개적으로 숭배함으로 겁 없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욕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을 하시는 동안에도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위협하고, 살해 모의도 하고, 의도적으로 사역을 방해했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철저히 가로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결국 복음을 위해서는 차라리 로마가 유대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 더 나을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침묵하셨지만, 실상은 그 당시 상황을 용인하고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정치적 입장’을 취하셨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예루살렘 전도의 경우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 사도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파하려 했을 때, 그를 알아본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그를 잡아 무참하게 구타해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동족인 유대인들에 의해서 죽음으로 내몰렸던 사도바울을 구해 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지배했던 로마 군인들이었습니다. 물론 그 후 비록 로마 감옥으로 이송되어 상당 기간을 지냈지만, 감옥 안에 있음으로 유대인들로부터 보호함을 받을 수 있었고 또한 여러 서신서들을 작성하여 내보내면서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파 할 수 있었고, 마침내 출옥하여 직접 복음 전파 사역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당시 이스라엘이 독립된 국가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복음 전파 현장에서 즉결 처형을 당했을 것이고, 사도바울의 생애는 그것으로 마감되었을 것입니다. 로마가 지배하는 정치 상황이 복음의 선포와 전파에는 도리어 득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짐작하게 해주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치와 종교를 합당하게 연결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정치적 환경과 밀접한 연관을 두고 있습니다. 정치가 잘못되면 신앙생활이나 신앙 활동도 함께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인들과 교회에게 있어서 정치는 너무나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책무 중의 책무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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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독교가 정치 사회에 빛을 비춰주는 역할을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빛이 있으면 흑암은 스스로 물러갑니다. 흑암의 세력이 들러붙어 증식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빛을 발산해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지금 한국 정치의 현실을 보면 타락의 정도가 상식적으로는 아예 납득이 되지 않는 수준까지 이르렀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전과자와 범죄 혐의자들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상당수의 법조계 인사들이 부패 정치인들의 심부름꾼들이 되어 악당 노릇을 하고 있음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문제의 판결을 보면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쓰레기 같은 저질들과 겁쟁이들이 판사로 활동하고, 겁을 상실한 강남좌파 똘마니들이 검사로 활동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이런 찌질이들이 불법 판결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리고 있는데 비판 한마디 못 하는 언론들이나, 분별을 못 하고 듣는 대로 끌려 다니는 대다수의 국민들! 한심하지 않습니까? 왜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흑암의 세력들이 나라를 이 정도로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교회는 뭐 하고 있었는지 가늠이 안 됩니다. 빛이 있으면 흑암은 사라지는 것인데, 지금까지 빛이 비치지 못했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썩게 만드는 부패 바이러스가 들러붙고 증식되어 사회의 구석구석으로 퍼져서 파고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분간해 주고, 시대의 양심이 되어 거짓과 진실을 알려주고, 미혹과 진리를 분간해 주고,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도록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목회자들의 솔선수범이 필요합니다. 교회 지도자들부터 세상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빛의 역할이란 사람들의 행위가 밝히 드러나게 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 3:20) 즉 문제점들이 드러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생각과 행위가 국민들에게 속속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이고 있음을 자각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빛을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시대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교인들에게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일상적인 용어로 전환해 전해 주기도 해야 합니다. 또한 교인들의 입에 넣어 주어 진리의 나팔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류 언론들부터 일부러 잘못되었거나 편향된 보도를 내보내고 있고, 가짜들이 판을 치고, 내놓고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범죄자들이 국회의원 자리를 훔쳐서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판검사들이 비겁한 정치 하수인들이 되어 협잡질하고 있기 때문에 목사님들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이 주도적으로 희생적으로 빛의 역할을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어두울수록 빛이 필요합니다. 정치권은 죄악과 권모술수가 만연한 악의 소굴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라고요? 정치가 없어도 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지만, 인간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는 정치를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정치를 피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적극적으로 나서서 진리와 공의를 세워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좀 더 영적으로 말하자면, 기독교 정신이 정치권에 영향력을 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인 분야에서도 각자 맡은 소임을 충성스럽게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동시에 크리스천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하여 그리스도의 빛이 정치권을 밝혀 암흑이 사라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의 권세를 받은 신도와 신도들이 모인 교회만이 조중동을 비롯한 기존 언론들의 횡포와 전횡, 그리고 좌파 정치인들과 좌파 시민단체들의 선동 정치에 맞설 수 있는 권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어디나 또 언제나 악이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악인들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제거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악인들을 제어하고 악행을 저지하고 막을 수는 있습니다. 그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목사님과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마 5:14) 악이 아무리 난리를 치려고 해도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상황판단을 올바르게 하고 있고, 그에 대비하여 빛의 역할을 감당하고 기도로 싸우면, 빛이 비췰 때 흑암이 자연스럽게 물러가는 것처럼, 불의와 탐욕과 분쟁은 물러가고 공법과 공의와 평강이 중심을 잡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위기에 봉착했다면, 누구를 탓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게 수수방관했는지, 혹은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된 이면에는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의 정치 무관심과 방관, 그리고 정욕을 따라 살면서 세상의 복을 추구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비춰주지 못한 것입니다. 어두움을 틈타서 좌파 세력들이 들어와 기생하면서 여기저기에 침투하여 빨대를 꽂아 이권 카르텔을 만들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의 언론과 사법부와 국회를 장악하여 나라 전체를 자기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세력을 만들고 확장해 온 것입니다. 이제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어두움을 그냥 두었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어두운줄 몰랐어도 문제고 알고도 고의로 빛을 비취지 않고 덮어 놓았다면 더 큰 죄를 진 것입니다. 지금이 때입니다. 모든 죄를 회개하고 시대의 양심이 되어 공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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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교회를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파수꾼이 됩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파수꾼입니다. 파수꾼이 경계에 실패하면 반드시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겔 33:6) 맥아더 장군은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세상이 망가져 가는데도 아무런 상관도 아니하고 예수만 잘 믿다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려는 영악하고 이기적인 자세는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파수꾼의 본연의 역할은 흑암의 세력이 침범하고 있음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보여주고 대비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정교분리라는 헛소리에 속아서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고 방관하다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지 마시고, 파수꾼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만히 교회에 들어온 “소경된 인도자”들을 물리치십시오! (마 23:16)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또 순수한 신앙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말라고 권하는 자들이 바로 ‘소경된 인도자’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목회자들을 보시면 단호히 물리치십시오. 자기도 망치고 남도 망치고, 하나님 나라를 욕보이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인물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는 경고를 주셨습니다. (마 15:14) 조심해야 합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남까지 망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교회도, 나라도, 개인의 신앙도 망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빛을 비춰 주십시오! 불꽃과 같은 눈으로 정치 현장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직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여 빛이 되어줄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가만히 주저앉아만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충성스럽게 움직이며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반사해 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십시오! 청함을 받은 자들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고 하셨습니다. 교회 출석하여 하나님의 복을 간구하는 교인들은 많으나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원하는 신자는 적습니다. 섬기고 구제하고 구제하면서 자기 이름을 높이려는 교인들은 많으나 은밀한 가운데 숨어서 봉사하는 신자는 적습니다. 교인들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애쓰는 교인들은 많으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진심으로 헌신하려는 충성된 신자들은 적습니다.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는 교인들은 많으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신자들은 극히 적은 상태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개개인의 사사로운 이득보다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더 소중히 여기고, 합심하여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지도자를 선택하고, 나라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때, 나라가 잘될 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평안하고 복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너희는....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렘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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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5/21/2025 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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