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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욥 38:2~3) 영문도 모른 체 재산과 가정을 잃어버리고 극도의 육체적 고통에 눌려 신음하면서도 신앙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의인 욥이, 분별할 줄 모르는 무지한 친구들에 의해서,
사악한
죄인으로 몰림을 당하고 있을 때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즈음 테러리스트들의 고문문제로 미국이 시끄럽습니다. 고문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잔인한 행위라고 단정 짓고,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어떻게 고문과 같은 미개한 행동을 하면서 다른 나라들에게 고문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으며, 고문을 하면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외치고 수호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문을 통하여 아무리 유용한 정보를 얻는다 해도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잘 분별해야
합니다. 맞는 말인 것 같았지만, 잘못된 상황 판단과 잘못된 적용이 합쳐지면 욥을 압박했던 욥의 세 친구들처럼,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만드는 주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본주의 사상에 현혹되지 말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미국이 먼저 테러리스트들을 잘 대해주면 아무리 악한 테러리스트들이라도 마음에 감동감화가 일어나서 자진해서 미국인들을 사랑하게 되고 포로가 된 미군들을 잘 대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인간의 악함을 모르는데서 나온 무지한 소망 사항입니다.
만약 이것이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셨어야 할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북한에게 따스한 햇볕을 비춰주고 도와주었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리 도를 닦고 아무리 사랑해주고 아무리 기다려도 인간은 스스로 선해 질 수는 없기 때문에 깡패나 히틀러와 같은 폭군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회나 나라가 약하고 보잘 것 없는 한 개인의 존엄성이 짓밟히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나라가 바로 선진국입니다. 그렇지 않고 힘이 세고 돈이 많고 권세가 높은 폭군 같은 사람의 존엄성은 무조건 존중해 주고, 재력 없고
권세 없는 자의 존엄성은 폭군의 자비에 맡기는 것이 미개한 나라의 특징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과 희생될 사람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진국입니다.
선한 동기와 악한 동기가 구분되어야 합니다. 의인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가하여 억지로 죄인이라 고백하게 만드는 것은 악한 동기에서 나온 악행입니다. 하지만 이미 알려진 테러 조직원을 압박하여 그들의 조직과 조직원들을 파악하고 대량살상 계획과 방법을 밝혀내는 것은 마땅히 책임지고 해야 할 선한 의무인
것입니다. 고문의 의도가 증오나 편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유용한 정보를 얻어 장차 희생제물이 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미국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테러리스트들까지도 자신들을 고문하는 사람들의 성실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고문은 고통을 가하는 것이고, 고통은 나쁘다. 그러니 고문은 악하다”는 식의 단순 논리들이 판을 칠 때, 그 사회에는 약삭빠른 사람들이나 위선자들이나 무책임한 사람들이 독버섯처럼 세력을 얻어서 착하고 성실하고 순수한 봉사정신을 가지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 나가는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몰아내어 결국
그 사회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어 놓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사랑의 매란 없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기 위하여 드는 매와 자기의 감정대로 자녀를 학대하는 매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실하고 선한 부모님들을 가혹행위자들로 매도하면서 괴롭히고 있습니다. 훌륭한 가정이나 사회를 만들기 원한다면 겉모양만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성실과 선함의 동기를 인정해 줌으로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우상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위해서 민주주의가 있는 것이지 민주주의를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안식일을 위하여 사람들이 기꺼이 희생당하는 일들이 있었을 때에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알려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테러리스트들에게 끌려 다닌다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 가장 하찮아 보이는 작은 사람 하나라도 테러리스트들이 손대지 못하게 보호해 주면서 자유를 누리며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다 보면 자연히 민주주의는 유지되고 발전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적인 방법 자체에 얽매여 자녀들에게 무조건 자유와 개인 의사를 존중해 주면 미국인 탈레반 John Lindh 같은 극단주의자로 성장되는 것이고, 반면에 자녀들로 하여금 건전하고
올바른 생각들을 심어주고, 절제시키고,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기독교 신앙을 전수 시켜주고, 엄하게 훈련시키면, 민주주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민주시민으로 성장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자체나 민주적 방법을 지키기 위하여 불필요한 희생을 감수할 것이 아니라, 힘없고 약한 소자 하나라도 폭력을 쓰는 자들로부터 성실하게 보호해 주고, 법을 지키도록 교육시키고 훈련시켜 줄 때 민주주의도 보호되는 것이고, 성실한 민주시민들이 나오고, 민주주의가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가 되지 말라.” (엡 5:6-7)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4/30/2009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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