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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은 우리가 찾고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2024년 3월의 시사

“지도자의 수준이 국민의 수준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확한 말인 것 같습니다. 즉 국민들이 똑똑해야 좋은 지도자가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를 탓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 각자가 각성하여 그 시대에 맞는 훌륭한 인물을 알아보고 선택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한동훈에게 큰 기대를 걸고 열광하는 국민들이 많아 보입니다. 그중에는 한동훈을 대통령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한동훈은 상당히 여러 면에서 뛰어난 탁월함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름의 외모, 똑똑함, 뛰어난 말재주, 남다른 매너, 그뿐만 아니라 법무부 장관을 거쳐서 이제는 한 정당의 대표가 되는 권세도 소유한 상태입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니는 한동훈의 카리스마와 젊은 나이에 당권까지 장악한 막강한 한동훈의 활동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마치 성경에 등장하는 사울왕의 출중한 외모와 솔로몬왕의 남다른 총명함을 합쳐놓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들의 결말이 아름답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동훈은 어떨까요?

국민들은 겉으로만 보고 그에게 열광할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세계를 면밀히 살펴보면서 그가 온 국민들을 다스릴 만한 품격을 갖추고 있는지,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추고 있는지, 올바른 지식을 가졌는지, 국민들을 다스릴만한 덕목을 가졌는지 조목조목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판단을 돕기 위하여 한동훈과 사울왕 그리고 한동훈과 솔로몬의 닮은 점들을 나열해 보고, 또 그런 내용과 문제점들을 분석하여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물론 판단은 국민들 각자의 몫입니다. 부디 냉철한 눈으로 살펴보시고 동의하시면 그 점들을 널리 알리셔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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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한동훈은 자신을 충분히 옳고 똑똑한 존재로 믿고 있는듯합니다.

사울과 솔로몬의 생애를 전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울의 출중한 외모와 솔로몬의 예리한 총명함, 그리고 이들이 각각 소유했던 왕권은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기에 충분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울과 솔로몬의 생애는 확연하게 전반부와 후반부 둘로 갈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하나님이 함께하셨던 복된 기간이고 후반부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았던 어두운 기간입니다. 그토록 모든 인류가 부러워할 만한 좋은 점들을 가지고 태어나서 화려하게 시작한 두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버린 다음부터는 일반인들보다 못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동훈에게도 사울과 솔로몬의 후반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즘의 한동훈에게서는 과거에 똑똑함은 찾을 수가 없고, 대신에 늙은 솔로몬이 가졌던 욕심과 어리석음이 크게 드러나 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내심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필요 없다고 생각해 온 결과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와 그의 주변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성당에 출석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생활 반경에는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은커녕 하나님과 관계된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의 언어에서도 북한식 “동무”를 연상케 해주는 “동료 시민”이라는 말은 들리는데 하나님 또는 그런 의미를 지닌 비슷한 말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사울의 장점과 솔로몬의 장점을 합치면 한동훈이 될 것 같다는 말은 우스갯소리 같지마는 않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성도들을 무시하는 한, 한동훈은 한낮 “늙은 솔로몬, 살기를 품은 사울”에 불과할 것이 뻔합니다. 따라서 국민들은 겉으로만 보고 그에게 열광할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을 냉철하게 살펴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나중에 회개하고 돌아와 겸손한 자세로 “전도서”를 집필했지만, 과연 한동훈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한동훈이 정말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어서 속히 “늙은 솔로몬”을 탈피하여 “회개한 솔로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장차 대통령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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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한동훈은 분별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사울왕처럼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버렸던 사울왕의 문제점을 한동훈이 그대로 안고 있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렘 8:9)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니, 분별의 지혜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분별력이 없으면 피아식별이 안 됩니다. 성령이 사울왕을 떠난 다음부터 사울왕은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그렇게도 충성을 다하려 끝까지 노력했던 다윗을 적으로 생각하여 그를 죽이려고 집요하게 따라다녔습니다. 다윗은 그를 돕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애를 썼건만 그의 눈에 보기에는 다윗은 오직 적일 뿐이었습니다. 아무런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놉의 제사장들도 그의 눈에는 적으로 보였고, 기회주의자 도엑은 아군으로 보였던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결과로 지혜가 사라져서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한동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지금 자기를 돕기 원하는 광화문 우파 국민들을 적으로 대하고 있고, 자기를 그렇게도 믿어주고 밀어주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도 적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도엑과 같은 가증스럽고 비루한 기회주의자 김경율을 아군으로 생각하여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있는 형국입니다. 사울왕의 판박이 아닙니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똑똑해 보였던 한동훈의 실상은 지혜가 없는 속 빈 강정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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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한동훈은 인기를 지도력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모래와 같은 “인기” 위에 인생의 집을 건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인기로 학교에서 반장이 되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인기로 국가의 통치자가 되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인기에 편승했던 페론 대통령 때문에 아르헨티나가 경제부국에서 후진국으로 전락했다는 것쯤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인기인과 지도자는 엄연히 다른 것이고, 동시에 인기인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훈은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인기”라는 모래 위에 그의 정치 인생을 멋있게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는 듯 보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살았으니, 진리와 공의로 다져진 정신적 밑바탕이 깔려 있을 리가 만무하고, 따라서 “인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헛된 인기를 마치 견고하고 거대한 바위로 착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줄줄이 따라다니면서 사인 해 달라는 무리에 떠밀리듯 움직이면서 신바람이 나서 쎌카 찍고, 기쁨과 자신감 속에서 마음껏 인기를 즐기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현상은 일시적 거품이지 영원한 것은 못 된다는 사실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국회의원 시절과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한동훈을 뛰어넘는 엄청난 인기를 등에 업고 활동했었지만, 나중에는 그 열화 같았던 인기가 도리어 미움으로 변하면서 불법 탄핵의 희생물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인기란 이런 것입니다. 그런 인기를 믿고 의지하고 도약의 토대로 삼는다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한동훈과 그의 사람들은 인기에 혹시라도 악영향을 줄 것 같아서인지 야당에서 기침 소리를 내면, 지체 없이 곧바로 자기들이 독감에 걸렸다고 드러눕고, 일단 내부 총질부터 해대고, 요구 안 해도 알아서 후보를 사퇴시키고, 안 보여줘도 될 것들까지 다 자진해서 꺼내서 보여주고, 광주에 가서 온갖 말로 아부하고, 김대중을 제일 존경한다고 굽신거리고, 보통 사람은 흉내조차 못 낼 정도의 호들갑을 떨고 있지 않습니까? 인기에 목숨을 건 주책맞은 모습입니다. 인기에 너무 신경을 쓰면 줏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사울왕이 자신과 나라를 망치게 만든 원인도 “인기”였습니다.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다윗을 향하여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춤을 추며 노래하는 바람에 다윗의 인기에 놀란 사울왕은 그때부터 충신 다윗을 적대시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적인 불레셋을 방비하는 것보다 다윗의 인기를 더 경계하게 되었고, 결국은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왕의 외모를 닮았다는 한동훈이 계속해서 요즘처럼 인기에 그렇게까지 매어 달린다면 그도 또한 나라와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릴 위험을 안고 가는 사람임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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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한동훈은 “옳은 길”을 찾으려는 지식도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 같습니다.

통치자가 되려 하기 전에 “옳은 길”을 택할 수 있는 능력부터 갖춰야 합니다. 길 중에는 “사망의 길”도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왕은 잠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 14:12, 16:25) 잠언에 두 번이나 등장하는 말씀 구절입니다. 한동훈이 정계에 들어서면서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하면 길이 되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언뜻 듣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인생 경험이 부족한 겁 없는 어린아이 같은 말입니다. 인생을 얼마큼이라도 진심으로 살아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생길은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두 종류의 길이 있다고 가르쳐주고 있지요? 하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 다른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가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입니다. 솔로몬의 잠언과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읽어보기만 했어도 다수의 인간들이 함께 가면서 만드는 길이 도리어 사망으로 인도하는 실패의 길이 될 가능성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터인데, 경험이 부족하여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적더라도 옳은 길, 선한 길, 공의의 길을 택하여 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시면서 “나를 믿으라.”라고 권고해 주신 것입니다. 한동훈이 정말로 정치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예수를 알고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을 넓은 길로 인도하여 사망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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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한동훈은 자기중심적 야욕을 가진 사람입니다.

국익 추구보다 개인적 야욕이 앞서고 있습니다. 이점에서도 한동훈은 사울과 솔로몬을 빼어 닮았습니다. 출중한 외모와 겸손한 매너로 등장했던 사울과 지혜를 받아 총명함을 뽐내던 솔로몬이 자신들의 개인적 야욕에 사로잡혀 나라를 위태롭게 했고 국민들을 혼돈에 빠뜨렸던 것처럼, 한동훈도 사울과 솔로몬의 길을 가고 있고, 결국 결말도 동일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한동훈의 야욕은 이미 벌써부터 대한민국에 추측하기도 어려울 만큼 막대한 피해를 줬습니다. 검사 시절에 그가 어이없는 억지 수사로 죄 없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징역 30년에 벌금 1,185억 원을 직접 나서서 구형했고, 올곧은 양승태 대법원장을 구속시키는데 확실하게 일조했고, 정직과 성실로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했던 이재수 기무사령관에게 말도 안 되는 죄를 뒤집어씌우고 거기에 더하여 수갑까지 채우는 등 극도의 울분과 수치심을 유발시켜 자살하게 만들었고, 정부 정책에 맞추어 최대한 협조하려 했던 이재용 삼성 회장에게 상식 밖의 죄를 뒤집어씌워 억울하게 구속시키고 경제활동을 마비시키는 데 일조했던 것도 한동훈의 개인적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정말 공의를 존중하는 마음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겨자씨만큼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라보다 욕망이 앞서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재앙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비대위원장이 되면서 “이기는 선거”를 선거 구호로 내걸었는데, 무조건 이기려는 습관적 야욕이 또다시 발동된 것 같아 걱정됩니다. 무조건 이기고 싶어서 필요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무리수를 두기도 한 듯 보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공의나 진실 여부나 국익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생각만 믿고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신을 사람들 앞에 내세우는 일에만 전력 질주하는 것 같습니다. 선거는 개인의 일에 앞서 국가의 일인데, 개인이 너무 앞서 나간다는 염려가 됩니다.

한동훈의 사욕은 의리와 명분조차도 뛰어넘는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파우치 사건에 대한 얼토당토않은 사과 요구를 묵과한 것도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적 야욕의 소산물로 보입니다. 파우치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를 사람이 아니건만, 그는 뜻밖에 “국민의 눈높이”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다기능 나름 잣대를 사용하여 비열하게 김건희 여사를 압박하도록 방치해 놓음으로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자신의 개인적인 정치적 욕망을 이루고 싶은 마음에서 자기를 그동안 철저히 믿어주고 밀어주었던 윤 대통령에게까지도 이런 유의 저열하고 비이성적인 배신행위를 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주위 사람 몇몇쯤은 희생시키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태도로 보입니다. 정말 치사하게도 한 연약한 여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아버리려는 작태인 것입니다. 이 정도면 위험한 사람 아닙니까? 솔로몬도 자기밖에 몰랐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담시키고 자기는 왕궁에서 7백 명의 후궁과 3백 명의 첩들을 거느리고 사치한 삶을 살다가 나라의 절반을 잃게 만드는 실마리를 제공했습니다. 자기밖에 모르고 사욕에 불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바로 다스리겠습니까? 사울도 자기밖에 몰랐던 왕입니다. 오로지 자신이 누리는 왕위를 공고히 하려는 사욕 때문에 다윗을 잠재적 경쟁자로 지목하여 제거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더니 결국 패망을 자초했습니다. 자기중심적 지도자의 사욕은 자신과 나라를 망칠 가능성이 높음을 아셔야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익을 국익보다 먼저 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정치 지도자로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단호하게 막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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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한동훈은 정치 지도자감이 전혀 못됩니다.

그의 정치적 감각은 거의 전무한 상태가 아닌지 의심됩니다. 상황판단이 안 되는 것같이 보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적합할 수도 있고 부적합할 수도 있는데, “경우에 합당한 말”은 커녕 뒤통수치는 말과 앞뒤가 맞지 않는 엉뚱한 말만 천재적으로 골라서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적을 한 방에 제압하던 강력한 언어 펀치가 이제는 돌연 제멋대로 움직이는 흉기로 돌변하여 정작 보호해야 할 사람들을 포함하여 아무나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니,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동훈은 똑똑하고 대체로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솔로몬과는 아예 비견될 수 없을 만큼 지식의 범위가 좁고, 깊이도 없고, 정치 역학 구도를 볼 줄 아는 안목도 없고, 더구나 잘못 알거나 대충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은 듯합니다. 특히 요즈음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정치철학이나 이념이 뜬구름 잡듯이 애매모호하고, 부정선거를 대비하는 자세를 보면 과학적 지식이나 이해력은 수준 이하인 것으로 의심됩니다. 특히 역사의식이 상당히 잘못된 상태로 비판 없이 일방적으로 입력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최근 행보와 언급을 보면 알 수 있듯이 4.3 사건의 본질, 원인, 결과 등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의심이 들고, 5.18에 대해서는 약간의 편협한 지식 이외에는 올바로 알고 있는 것이 없거나 대부분 잘못 알고 있는 듯하고, 전반적으로 잘못 세뇌된 상태인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하여도 착각하거나 속고 있는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역사의식은 통치 신념과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에 통치 권한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통치해 나갈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합적으로 볼 때, 전반적으로 한동훈은 광범위하고 명확한 지식과 날카로운 감각이 요구되는 민주주의 정치 분야에는 전혀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정치 덕목도 아직 갖추고 있지 못한 듯 보입니다. 덕목이 있어야 국민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없다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동훈이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공식적으로 NCCK를 방문한 자리에서 자기가 "약자를 위해 도움 될 수 있는 삶을 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는 자기 자신이 자유민주주의 정치 지도자감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약자들을 돕겠다고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무조건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개인으로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들을 이끌어갈 한 정당을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의 위치에서는 경솔한 말이고 한참 모자란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정치 지도자는 전 국민을 하나로 만들어 끌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지도자는 약자와 강자는 항상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성경에도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자와 강자는 상대적 개념입니다. 약자 없는 강자, 강자 없는 약자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누군가 약자가 되는 순간 다른 사람은 상대적으로 강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약자를 도와서 강자로 만드는 순간, 강자들 중의 하나는 약자의 위치로 떠밀려 내려가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약자도 강자도 똑같이 모두를 중요한 인적자산으로 그리고 똑같이 귀중한 국민으로 대해야 합니다. 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 없이는 가난한 자가 없고, 가난한 자 없는 부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회든지 부자와 가난한 자는 섞여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서로 섞여 사는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 서로 대립하면 재앙을 몰고 올 것이고, 서로 상부상조하면 좋은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약자와 강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 불가결의 관계입니다. 이 둘이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상생하도록 만들어야 할 사람이 바로 정치 지도자인데, 둘 중의 한편만 돕겠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것은 경솔하다고 할 수밖에 없고, 정치를 모른다는 뜻이고 동시에 정치 지도자로서는 자질이 없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은 약자의 편이라고 알고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약자라는 이유로 약자 편을 든 적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부자들보다는 주로 약자들이 더 많이 예수님 주위에 모여든 것이 사실이지만, 예수께서 약자들의 편을 들어주셨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절실히 도움이 필요했던 약자들은 예수의 도움을 얻고자 필사적으로 예수께로 모여들었지만, 상대적으로 도움이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었던 부자들은 예수께 나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에도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출 23:3)라고 했습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가난한 자의 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는 무조건 모두 불쌍하고, 불쌍하니까 도와주어야 한다는 논리는 사려 깊지 못한 인간의 논리이지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고, 예수님이 약자 편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약자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요즈음 정치인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약자 편이 되겠다는 포부를 자랑스럽게 밝히고, 또 왜 그런 사람은 무조건 착하고 선한 것처럼 받아지고 있을까요? 좌파들의 천박하고 사악한 이념 논리에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좌파들이 강한 자를 포악한 늑대로 악마화하고 약한 자를 희생양으로 미화시키는 선동선전을 해 온 결과, 대다수 국민이 “강자는 악마, 약한 자는 선한 희생자”라는 엉뚱한 가짜 프레임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약한 자는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강한 자는 타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 지도자가 약자를 희생양으로 보는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편을 가르게 되어 있고, 나라는 대립과 투쟁으로 가다가 결국 파멸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치 지도자는 개인이 아니고 공인입니다. 한편만을 들 수 있는 것은 개인이지 공인이 아닙니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지도자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공적 시각과 합당한 자세를 아직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그런 사람은 통치자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정계 진출이나 활동을 하도록 길을 열어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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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국민들이 냉정을 되찾아야 합니다. 겉만 보고 열광할 때가 지났습니다.

한동훈은 사울왕의 외모와 솔모몬의 총명함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실상은 사울과 솔로몬의 어리석음과 무능 그리고 답답함과 꽉 막힌 사고력의 소유자임이 이미 밝혀졌다고 생각합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한동훈은 정치할 감각도, 능력도, 성품도, 덕목도 갖추고 있지 못한 사람입니다. 똑똑하다고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도 자신이 “헛똑똑이”였었다고 스스로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한동훈 스스로도 지금쯤은 자신이 정치에 관한 한 무지한 수준임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아직도 모르고 있다면 국민들이 알게 해 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자신들만의 이득을 얻기 위하여, 약자를 위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약자를 이용하고, 국민만을 위하는 척 "국민의 눈높이"라는 의도가 의심되는 정체불명의 구호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국민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는 정치인들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새롭게 눈을 들어, 자기보다 나라를 더 우선시하는 인물, 자기보다 국민들을 더 사랑하는 인물, 인기보다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 올바른 역사의식, 올바른 이념을 가진 인물을 찾아서 세워야 합니다. 이런 인물이 없다고요? 그렇게 말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눈앞에 있어도 못 알아보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사특한 메이저 언론들과 사악한 종북좌파 정치인들에게 끌려다니지 마시고, 굳건히 서서 전심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시며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찾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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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3/23/2024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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