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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만큼은 성경에 관하여 모릅니다. 신앙교육을 잘 시키기 위해서는 교역자들이 더 전문적이고 능률적이지 않을까요?
Answer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경지식이 아니라 신앙 생활입니다. 외국어를 배우려면, 어른은 문법을 배우면서 언어를 배워야 하지만, 아이는 말부터 먼저 배우고 나중에 문법을 배우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른은 말씀을 배운 후, 그 배워서 깨달은 말씀을 생활에 적용시켜야 하지만, 아이는 순서에서
반대입니다. 즉, 우선 신앙 생활을 먼저 배우고,
그 후에 말씀을 배워서 실천하고 있는 생활 속에서 확인하여 깨달아 지식으로 간직하는 순서를 가져야 그것이 진짜 성경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이 말씀과 생활이 서로 다른, 위선적 신앙 생활을 하는 경우, 아이에게 치명적으로 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아이에게 가르치는 성경공부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삶의 전수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도, 믿음으로 생활하시는 분들이 삶의 현장 속에서 직접 자녀들을 가르쳐야 진정한 신앙교육이 가능합니다. 학교 공부하듯이 책 속에서만 배워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은 성경공부만 하면 얻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성경 공부는,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신령한 것을 배우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땅에 계신 부모의 공경을 통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나라와 뿌리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하늘 나라를 사랑하고 동경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배웁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게 되어있습니다. 이와 같이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이 아무리 배워줘도 결국은 부모님을 보면서, 가정의 보호를 받으며, 나라를 사랑하면서, 자연을 바라보면서 (잠언 12:10),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의
사랑과 교회 역할과 장차 갈 하늘나라를 배우도록 되어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론적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체계적으로 모르더라도, 몸으로 아버지의 사랑과 훈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의 속성을 아는 것보다는 성령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구원의 교리보다는 나의 생명과 물질과 지혜와 시간이 모두 주님의 것인 줄 알고 받은바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많은 지식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 내용은 잘 모르더라도 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성령의 능력을 믿고 매일 기도하며 삶을 승리로 이끌어 가는 믿음의 삶 속에서 보고, 만지고, 듣고, 느끼는 것이 바로 제일 중요한 성경 공부인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삶 속에서 실천을 통하여 배운 한 구절의 성경 말씀이 귀로만 듣는 많은 성경공부보다는 훨씬 효과적인 것입니다.
둘째, 부모의 성경적 자녀 교육은 책임의 문제이지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가 유능하면 가르치고 무능하거나 가르치기 싫으면 안 가르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님들에게 이미 다스릴 권세도 아울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1장18절부터 21절까지 읽어보면,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반항하고 대드는 자녀는 합법적으로 사형까지도
시킬 수 있는 권한이 부모님에게 주어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마태복음 15장4절에서 언급하였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권한을 받았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결국 자녀들을 가르치고 지도할 책임도, 다른 사람들이 아닌, 전적으로 부모님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셋째, 부모님만큼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교육의 필요성은 피교육자의 미숙함 때문입니다. 어려서 하는 공부는 힘들고 어렵지만 정말로 보람 있고 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부해야지” 하고 결심할 때는 이미 때가 늦어져 시기를 놓친
후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공부의 중요성을 그렇게 까지는 인식하지 못하고 공부를 하게 됩니다. 알아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따름이지요. 따라서 공부를 잘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은 내 자신이 그 중요성을 깨닫기 전에 누군가가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들어 주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 누가 과연 이런 아이가 원치 않는 어려운 일들을 친히 원망을 들어가면서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이가 잘 되도록 밀어줄 수 있겠습니까? 우선 첫째로 꼽을 수 있는 분이 부모님 아니겠습니까? 신앙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교육의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노력을 해야
되지만, 부모님이 자녀의 신앙교육의 주체가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인 것입니다. 신앙교육은 실력의 문제가 아니고 책임과 정성과 특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믿음과 정성어린 마음으로 행하려는 사람에게 넘치는 능력을 주십니다. 못 가르치는 진짜 이유는 안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9:23)라는 고백과 함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케 하곤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녀들을
양육시켜야 하는 부모님들에게도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자녀 양육 전문적인 교역자들이 해야 할 일은 부모님들로 하여금 부모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일이지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하는 일은 아닙니다.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부모님보다 더 전문적인 사역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잠깐 동안이나 특정한 부분에 관하여는 일시적으로 전문 사역자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전적으로 자녀를 맡아서 신앙교육을 시키는 역할은 오직 부모님이 맡아서 하셔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자녀 교육이라는 십자가를 손수 지셔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을
떠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중대한 사명을 맡아 남은 십자가를 져야 할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삶의 현장에서 자녀들을 하나님의 일꾼들로 양육시켜야 하는 중대한 사명을 맡은 부모님들에게 예수님은 똑 같은 말씀을 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모들아!) 일어나라 함께 가자!”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3/11/2005 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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