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uestion
예언의 은사를 받은 분이 있다고 하는데 믿어도 될까요? 잘못된 분이면 어떻게 하죠? 간간이 예언이 안 맞을 때도 있다고 해요. 어떤 분들은 저보고 직접 예언의 은사를 구하라고 하는데…
Answer
예언이란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자체를 의미합니다. 즉 가장 확실한 예언은 성경 말씀입니다 (벧후 1:19-20). 또한 예언의 은사자들을 감동시키셔서 그 당시의 상황에 따라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에는 방언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예언의 은사를 받아 예언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언이 있음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방언이나 병 고침의 은사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예언의 은사도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께 구하라고 권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주시는 말씀이기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올바로 받을 줄 아는 지식과 태도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예언이란 무엇이며, 왜 주시는 것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대해야 합니다. 섣불리 은사자들을 판단하거나 또는 하나님처럼 의지하거나 또는 이단시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첫째, 점치는 것처럼 예언의 진위여부를 판단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고전 14:3). 즉 예언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속한 성도들 모두를 위하여 올바른 길로 가도록 교육시켜 주고 훈련시키는 것이요, 잘못하는 것을 지적해 주면서 훈계하는
것이고, 세상에 살면서 힘들어 하는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인 동시에 위로해 주시기 위하여 주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따라서 점치는 것처럼 맞았느냐 틀렸느냐를 가늠해 보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래에 올 결과를 말하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언의 말씀을 받을 때는 맞았느냐 틀렸느냐를 가늠해 보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귀 담아 듣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받아들이기 힘들면, 오직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행 21:14)라고 기도하는 자세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했고 또 그 열매를 보아서 그들을 알라고 했습니다. 열매를 본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틀렸나 맞았나? 그렇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어떤 나무의 열매인가를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열매, 곧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아니면 육신의 열매를
맺는가를 점검함으로 분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가시나무는 가시나무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즉 종류를 보아서 알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이점을 조금 더 실질적으로 표현 하셨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분쟁과 술수와...방탕함과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또한 신명기 13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분별해야 되는지 알려주는 말씀들입니다. 예언의 말씀이 성도들에게 영적 생명을 주어 깨어있고 움직여 하나님께 속하여 살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진짜로 여기면 되고, 예언의 말씀이 무당의 푸닥거리 식으로 무병장수나 재산 축적, 또는 듣고 싶어 하는 말과 달콤한 말만 해주고, 재미있게 해주고, 유쾌하게 해주어 타락하고 잠자게 해 주어 세상에 속하도록 만드는 것은 가짜로 여기면
되는 것입니다. 즉 예언의 진위를 파악함에 있어서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는가 아니면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켜 주는가가 분별의 기준임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당장의 결과만으로는 예언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기에 부족합니다. 물론 잘못된 내용을 예언으로 말할 수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언의 결과가 올바른지 또는 틀렸는지를 지금 이 시점에서 미리 확인해 본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25년이 지난 후에나 사실이었음이 판명되지
않았습니까? 독자를 낳기 전까지의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예언이 안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동시에 틀린 것으로 얼마든지 오해 할 수도 있었던 기간이었습니다. 결과를 보아서 진위여부를 알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기간이 짧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누이들이 예수님을 불렀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가시지 않고 나사로가 죽을 때가 지나도록 그냥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나사로가 죽은 후에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곳을 비로소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당장의 현실을 토대로 판단하면 모두 틀린 예언들입니다. 왜냐하면 죽을병인데 죽지 않을 병이라고 하셨고, 죽었는데 잠들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러나 이후에 나사로가 무덤 속에서 살아 나온 궁극적 결과를 보면 예수님의 예언이야말로 정말로 올바른 예언이었음을 비로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이 장차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결과가 예언의 말씀으로 언급될 수도 있지만, 반면에 예언의
말씀이 중간과정 중의 하나로 선포될 수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엘리야는 하늘에 불병거를 타고 올라가기까지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 머룰라.”고 매번 명하면서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또 여리고에서 요단 건너편으로, 그래서 요단강을 건넌 다음에 비로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매번 죽으러 가는 것처럼 말했지만, 틀리고 틀리다가 마지막에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매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 머물라”고 명했는지, 또 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그렇게 여러 곳을 다니라고 했는지 알 수 있습니까? 만약
곧바로 요단을 건넜어야 할 것을 예언의 말씀을 잘못 받았던 연고로 벧엘이나 여리고로 쓸데없이 다닌 것이라고 누군가 주장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만약 제자 엘리사가 벧엘에 도착했는데도 엘리야가 머리 위로 취하여 감을 당하지 못한 것을 보고 엘리야의 예언의 진실성을 의심하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예언의 진위여부를 당장 나타나는 결과로 보려는 것은 얼마든지 어리석은 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꼭 아시기 바랍니다.
예언의 내용 자체로 예언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려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현명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들은 말씀의 내용만으로
진위 여부를 판단했더라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는커녕, 절대로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지 조차도 않았을 것입니다.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오로지 아들 하나만 있는 늙은 아버지에게 독자를 잡아서 번제로 바치라고 하는 말씀은 말씀 자체가 틀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틀린 것입니까? 틀린 듯이 들리지만 절대로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시기 이전에 벌써 이삭대신 잡을 양을 준비해 두신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을 들으면서 예언의 내용 자체를 분석하여 진위여부를 판단하려는 것도 대단히 어리석은 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예언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불순종하기 위한 구실로 예언이 맞았느냐 틀렸느냐를 거론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자세입니다. 이런 좋지 않은 동기에서 예언에 대하여 거듭 언급하는 분들을 멀리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예언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 마음에 들면 좋아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예언하는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든지,
또는 자기 의지대로 하고 싶어서 예언의
불필요성을 외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아예 안들은 것으로 하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예언은 듣고 있는 사람을 교육시켜 주는 것이고, 훈련시켜 주는 것이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고,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이고, 용기를 주고 위로해 주는 것인데 안 듣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론 이해는 갑니다. 예언의 말씀대로 하기는 정말로 싫고, 불순종하기도 싫고, 이 둘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예언자가 잘못 되었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 마음이 편할지 모르지만,
자기의 입장을 변명하기 위한 구실로써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한다면 그 이후에 벌어지는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위험한 행위입니까. 조심하십시오!
둘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예언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예언이 혹시 틀렸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합니다. 이것은 점 궤를 보러 간 사람이 하는 말이지; 예언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해야 할 염려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언의 주체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예언하는
사람을 택하시어 사용하시는 분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가야바는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으로써 예수님을 죽이고 싶은 악한 마음을 품고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요한 사도께서는 이와 같은 해석을 내렸습니다: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prophesied)” (요 11:51-52). 비록 악의를
품고 한 말이지만 가야바를 대 제사장으로 세우신 하나님은 가야바의 입술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적절하게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시어 인도해 주시는 분이나, 예언자를 택하시고 사용하시는 분이나 똑같은 동일하신 하나님으로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 정말로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경우는 단 한 가지 조건이 해당 될 때 뿐입니다. 즉 예언이 옳고 그르고 관계없이 예언의 말씀을 받는 사람의 심령이 잘못되었으면,
틀림없이 잘못된 길로 갑니다. 이 말은 은사자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원인과 결과를 생각해 볼 때 그런 결론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보고 혹시라도 “무리를 미혹하는 자”가 아닌가 하여 의심하면서 혼란에 빠진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 7:17).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말씀도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올바른 예언을 받았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는 마음, 즉 순종하려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으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나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넘긴 가롯 유다가 이런 부류에 속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으면서도 자기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잘못 되었다고 우겼으니까요! 그러므로 예언을 받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따르려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우선적으로 살피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정말로 잘못된 말씀을 전했어도 실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잘못된 말씀이 전달 되었어도 책임을 지시고 자녀들을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친히 살아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이런 내용들이 나와 있습니다.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뇌물을 받고
잘못된 예언을 했고,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이 잘못된 예언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를 보호해 주시고 바로 인도해 주셨던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특별히 직통 계시를 받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특별한 은사를 받았던 사람이 아니었고, 단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하여 밤낮으로 애썼던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려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런 은사를 주신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의 마음에 깨달음을 주셔서 올바른 방향을 나아가게 해 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잘못된 예언을 받았다고 다 잘못 되는 것이 아니고, 예언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올바르지 못할 때, 잘못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잘못된 예언에 대하여 물론 조심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앞서서 나의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100% 순종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 항상 책망 받을 각오로 예언의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받는 사람이 거짓 예언자들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사실 거짓 예언자는 예언하는 사람도 물론 책임이 있지만, 듣는 사람들도 잘못되어서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합 왕의 경우를 보십시오. 아합 왕은 자기의 뜻을 뒷받침해
주는 예언자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를 미워했던 이유가 바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말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가야 선지를 미워하고 상대하지 않으려고 피했던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400명이나 되는 거짓 선지자들을 대량으로 키우게 되었고, 400:1이라는 다수에 힘을 입어 전장에 나갔다가 죽어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예언”만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항상 책망 받을 각오로 예언의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넷째,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연합하여 선을 이룸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잘못된 예언을 받고 혼동이 되어서 잠시 동안이라도 손해 보는 것에 대하여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손해 보는 것이 생활에 포함된 종교입니다. 십자가부터가 손해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손해 보는 사람들을
위하여 부활의 축복을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직접 손해 본 것을 몇 배로 갚아주신다는 멧세지가 부활의 약속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성경을 읽는 우리들은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과 권고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전도하러 간 것이 잘된 것인가 또는 잘못된 것인가를 토론하고 있습니다. 잘 잘못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들어본 일이 있으십니까?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도 바울은 오랜 동안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고, 감옥에서도 전도했으며, 감옥에서 서신서들을 많이 썼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빌립의 딸들 중에 누군가가 예언을 잘 못 받은 것입니까? 아니면 올바른 예언이었지만 누군가 잘못 해석한 것입니까? 아니면 올바로 받고 올바로 순종한 것이 바로 이런 결과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까? 혹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았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도 또 아무것도 모릅니다. 단지 사도 바울은 성령의 매임을 받아 순종하며 행했을 따름입니다. 여기에 “맞고 틀리고”가 없는 것입니다. 혹시 잘못된 길로 갔다 치더라고 순종하려고 행한 사람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연합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는 손해라는 것이 없다는 점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혹시 실수를 했더라도 교훈으로 얻는 것이 더 많은 법이고, 혹시 당장은 손해를 봤어도 순종한 사람에게는 나중에 받을 축복이 지금 본 손해보다 훨씬 더 큰 것입니다.
다섯째, 예언은 안 이루어 질 수도 있고, 더디 이루어 질 수도 있고, 다른 형태로 이루어 질 수도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아브라함에게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하셨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주어지지 않았고 오직 자손에게 준 것만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예언의 말씀을 듣고 애굽을
떠났던 백성들이 모두 가나안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언이 안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언을 믿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당장에 전부 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더디 이루어 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들은 죽을 때까지 가나안 땅이 자기들의 소유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도 바울 선생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언이 다른 형태로 이루진 것입니다. 예언을 점쟁이의 점처럼 대하지 마시기 부탁 드립니다.
여섯째, 예언은 하나님의 계획의 일환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점치듯이 결과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역사하시어 이루실 하나님의 긍극적 목표와 우리가 행해야 할 일부분의 실행 계획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어 우리와 함께 일하시면서, 전체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여
이루시지만, 일부분은 우리에게 맡기셔서 이루십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가 할 부분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 예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포된 예언의 말씀은 예언이 이루어 질 줄 믿고 그 것을 위하여 기도하며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실질적으로, 결과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을 믿은 사람들에 의해서만 쟁취되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 성을 돌면 무너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웃기는 이야기로 들려서 안 돌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틀림없이 예언은 안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예언은 그 예언을 믿고 행하는 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고 유용해 지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되는 무당의 점 궤가 아님을 확실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예언은 부분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고전 13:9)라고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셨고, 심지어는 예수님조차도 이 땅에 오셔서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언하는 은사자는 모든 것을 알아서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알려
주는 부분만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전부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된 예언자의 태도이지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면 거짓 예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받은 말씀으로 인하여 더 고민하게 될 때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덟째, 자신도 예언의 은사를 받아 미래를 알아 보려 하지 마십시오. 이 말은 예언의 은사 자체를 구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사사로운 목적으로 예언의 은사를 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언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즉 방언은 자신을 위하여 하는 것이지만 예언은 교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혹시라도 미래에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을 자신도 알아 사업도 잘해보고, 자식들 기도도 해주고 싶어서 예언의 은사를 받고 싶어하는 분들이 계시면 정신 차리십시오!!! 예언은 철저하게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내게 맡긴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해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은 은사자라도 하나님께서 안 가르쳐 주시면 그만인 것입니다. 예언의 은사는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입술을 사용하시는 역사의 일환이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예언을 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하시는 분들치고 곤고함을 당하지 않는 분들이 없습니다. 잘 사시지도 못합니다. 늘 고난이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나 모세처럼 원망과 시비를 도맡아 듣기가 일쑤인 것입니다. 남들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혹시 예언의 동기가 예언하는 사람 자신만의 유익을 위한 것이면 기본 원칙에서 벗어나게 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잘못 사용되기 쉽고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여러 모양으로 우리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예언의 은사자들을 사용하시는 것은 다양한 인도 방법들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자신이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늘 점검하면서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며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함을 받기 위하여 굳이 예언의 은사를 받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유익을 얻기 위하여 예언의 은사를 받으려는 자세는 갖지 마시기 부탁드립니다.
순서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순종하려는 마음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습니다. 우리들이 염려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이 너무나 미약한 상태에 있지나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진리의 말씀이 매일 24시간 전파되고 있는 이 때에
“믿고 행하려는 사람”들을 찾기가 너무 힘듭니다.
계속해서 정말로 “진실 되고 올바른 교훈의 말씀들”이 날마다 홍수처럼 쏟아져 내리지만, 방금 들은 진리의 말씀을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시대처럼 눈 씻고 찾아 보려고 해도 찾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즉 잘못된 말씀도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더 염려가 되는 것은 귀만 즐기려는 교우들의 잘못된 자세인 것입니다. 즉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예언된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실행하려는 마음도 없으면서 예언의 진위여부를
걱정하는 것은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러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분별도 되는 것이고, 보호함도 받게 될 것이고, 생명의 길로 인도함도 받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걱정해 줄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언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고, 사용자가 하나님이시고,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
당장 이루어지고, 나중에 이루어지고, 그대로 이루어지고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소관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언을 듣는 분들의 삶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혹시 손해 볼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 심령 상태인 것입니다. 내가 잘못되었으면 틀림없이 잘못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예언자와 제사장과 왕이 몽땅 한꺼번에 서로를 의지하면서 거짓 예언을 하고, 거짓 예언을 요구하고, 거짓 예언을 선택하고, 거짓 예언으로 확신을 얻고, 거짓 예언으로 내 자신을 속이고 합리화 시키면서 나가면
집단으로 타락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이지만, 한 사람이라도 의인이 있으면, 즉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속한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예언의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5/13/2005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