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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우리 아이가 동성애가 왜 문제가 되느냐고 묻는데 어떻게 대답해 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기 때문에 동성애자들도 사랑으로 품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어야 할까요?
Answer
“삼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사람들은 예외 없이 모두 죄인들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지칭하면서 책망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강도나 사기와 같은 특별히 나쁜 죄를 지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누룩, 곧 잘못된 신앙과 잘못된
사고방식과 잘못된 분별력과 잘못된
행동양식에서 비롯되는 해로운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요즈음은 동성애자들이 큰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서로를 미워한다든지 이웃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쳐서 문제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이 주장하는 대로 자기들끼리 서로 좋아하면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성애의 문제점은 그 동성애자들의 성품의 좋고 나쁨이나 선행이나 악행의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을 무질서로 몰고 가기에 충분한, 동성애자들의 사고방식, 동성애자들의
생활철학, 가치관, 인생관과 습관같은 눈에
안 보이는 해로운 영향력에서부터 기인하고 있습니다. Karl Marx가 유토피아를 꿈꾸고 공산주의 이론의 골격을 만든 것은 처음부터 사람들을 죽이고 못살게 하려고 했던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는 인류가 성공적으로 살아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려 했다고 봐 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가 만든 공산주의 이론과 실천은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피의 광란으로 끌려 들어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동성애적 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물사관이 가는 곳마다
계급투쟁이
일어났던 것처럼, 동성애자들이 활보하는 곳에 동성애적 사고방식과 태도가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것은 너무 자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동성애로 인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알림으로 우리와 우리들의 자녀들을 동성애적 사고방식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저들을 멀리해야 할 필요도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이 어떤 생각과 습관을 갖고 있는지, 동성애자들을 그대로 받아줌으로 인하여 장차 사회에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또 왜 저들을 멀리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지금부터 잘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사회질서가 점차로 무너지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나 육적감각을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섭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들은 “좋고 싫은 감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회가 손가락질을 해도 자신들의 경우에는
동성이 “좋고” 이성은 “싫기 때문에” 동성과 함께 살겠다는 것이고, 사회가
그런 특수한 사정을 이해하고, 동성애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개인적으로 느끼는 “좋다는 느낌”과 “싫다는 느낌”을 근거로 개개인이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언뜻 듣기에는 별반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실은 대단히 위험한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만약 이런 원리를 사회가 허용하게 되면 큰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죽이고 싶은 느낌이 들면 상대를 죽여도 된다는 극단으로 치달을 수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갑자기 자기 아내보다 이웃집 여자가 더 좋아지면 조그만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기 아내를 당당하게 버리게 될 것이고, 갑자기 가정생활이 지겹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혼자 훌쩍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버려도 아무도 무어라 말을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보다 더 위험한 자세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 마음이 아무리 끌려도 다른 사람의 아내를 사랑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랑하는 것이 무슨 죄냐?”라고 따진다면 이런 사람은 마땅히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인을 저지른 후, 미워서 죽였으니까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자세인 것입니다. 한참 공부해야 할 나이에 있는 자녀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공부를 안 하겠다고 주장하거나 기분 나빠서 공부 안 하겠다고 버틴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자기감정이나 자기 입장만 주장하는 사람은 미련하고 위험한 인물입니다. 사람은 이웃을 생각해서, 질서를 생각해서, 자기가 좋아도 참을 줄 알아야 되고, 싫어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싫으면 못 견디고, 좋다고 달라붙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바로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싫고 좋다는 감정 때문에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까지도 무시하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섞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법질서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일시적으로 끝날 수도 있는 “좋아하는 감정”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온 인류가 지금까지 지켜오던 생존에 관련된 기본적 관습까지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일반법을 무시하는 것은 다만 시간문제일 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동성애는 “좋아하는 감정” 자체를 우상화시킴으로 인하여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를 무너뜨리는
나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멀리해야 하는 나쁜 습성이며 나쁜 자세라는 사실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아가페 사랑을 육체적 감정적 사랑으로만 인식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알고 하던 모르고 하던, 아무튼 그들은 “아가페 사랑”을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이나 육체적 느낌으로 대치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 모아 놓으시고 간곡하게
부탁하시기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아가페)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감정적 사랑”에 머물지 말고 일방적으로 줄줄 아는, 의지와 행동에 기반을 둔, 절대적인 “아가페적 사랑”을 하라고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사랑이 감정적인 요소만 포함하고 있다면 참다운 교우 관계가 형성될 수 없게 되고, 결혼관계도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정적인 사랑이나 육체적 느낌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들은 모든 “사랑”의 의미를 무조건 육체적 감정적 현상으로만 국한시키면서, 동시에
그 육체적 감정적 사랑에 절대성을
부여하려 하고 있습니다. 즉 “아가페적 사랑”인 경우에만 해당될 수 있는 절대성을 “감정적 사랑”과 육체적 느낌에 억지로 접목시키려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마치 숭고한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참고 견디는 순례자들 같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맺으며 감정적으로 느끼는 사랑이나 육체적 쾌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것입니다.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사람은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아야 되는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감정적인 사랑은 그 대상도 계속해서 변하고,
수준도 계속해서 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기까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으로는 옆집 친구 오빠나 동생을 좋아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누군가를 좋아할 수도 있고, 친구로만 생각하던 이성이 점점 사랑의 대상으로 변하는 일들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기까지 여러 상대자들을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하게 사랑해 봤던 경험을 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결혼 상대자를 찾기까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문자 그대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즉 결혼으로 결합되게 만들어 주는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절대적인 아가페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하고 나서 싫어지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상대를 버리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아가페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거의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여겨도 될 만큼 흔치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녀를 결합시켜 주는 사랑은 상대적인 요소가 강한 사랑인 반면,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동성애자들의 모순과 오류는 바로 이
점에 대하여 무식하거나 일부러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저들이 상대적인 감정적 사랑과 육체적 쾌감을 절대화시킴으로 인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육체적 감정적인 사랑을 아가페 사랑으로 오인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부탁하신 아가페로 사랑하라고 하신 명령을 감정적인 사랑과 육체적 느낌으로 제멋대로 변경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와 같은 문제점을 자녀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올바로 알려서 혼란을 반드시 막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부탁하신 사랑은 자기도 모르게 끌리는 단순한 육체적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감정을 떠나서, 말씀에 순종하여, 의지적으로, 행동으로 하는 아가페 사랑인 것입니다. 즉 우리들이 해야 할 사랑은 손해가 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의지적으로 값없이 베풀어 주는 사랑이고, 싫어도
하나님의 뜻인 줄 믿고 관심을 기울이고 돌봐주는
사랑이고, 불리해지고 외롭게 될 지라도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랑이고,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이고, 오래 참고, 성내지 않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런 아가페 사랑이 소중한 것이고, 우리들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이런 아가페 사랑을 해야 하고, 이런 아가페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하고, 이런 아가페 사랑을 전파해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가정 문제에서 하나님을 제외시키는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동성애자들은 결혼관계를 단순히 인간과 인간의 문제로만 국한 시키려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정을 만드시고 주인이 되어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가정으로부터
완전히 손을 떼도록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동성애자들은 결혼 제도를 하나님이 주신 절대적인
제도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육체적 감정적 사랑의 결합체로만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성애자가 주장하기를 “나는 태어 날 때부터 여자보다는 나와 같은 남자가 좋은데, 왜 내가 사회 통념 때문에 손해를 봐야 하느냐?”고 힐문합니다. 동성애자들이나 동성애자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착각은 이와 같이 결혼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혼은 단순히 남녀의 사랑의 결합만이 아닙니다. 사실상 부부가 느끼는 짜릿한 감정은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것입니다. 실질적으로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연인들이
결혼을 하고 난 후, 그 뜨거운 사랑의 열정이 얼마나 가나요? 아무리 길어도 1년이 안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음도 불사할 만큼 열렬했던 감정이 일 년 내에 식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결혼 생활 전체의 요소들 중에 짜릿한 감정이 차지하는 것은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결혼생활의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부분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결혼이란 하나님께서 손수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불러서 맺어 주신, 하나님과 연합된 정말로 신령한 결합체인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생산적으로 하도록 해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생각하셔서,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하나님께서 맺어 주신 관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고 결혼 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감정이 없이 결혼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혼한 두 사람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성실히 하다가 보면 결국은 서로 진심으로 더 높은 차원에서 진지한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먼저 오고 나중에 사랑하는 감정이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없이 사람끼리 좋아하는 감정으로 인하여 연결되고 형성된 결혼은 지속되기도 힘들고, 사실상 그런 가정은 형태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가정이라는 기관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둘이 한 몸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손수 만들어 주심으로 탄생되게 되었습니다. 즉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짝 지워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자신이 결혼을 해야 되는지도, 또 누구와 해야 되는지 조차도 몰랐습니다. 결혼의 필요성을
아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와를 만들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결혼식을 올려 주신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두 사람을 하나로 맺어 주시고, 하나님이 맺어 주신 관계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결혼에는 하나님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삭은 아내를 보지도 않고, 즉 사랑을 느끼기 이전에, 이미 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신부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했고, 두 사람이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은
실질적인 만남이 있은 다음에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면 가정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이웃들을 보면 쉽게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 가정에서는 질서가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뜻을 따를 때 가정에서 질서가 잡히고, 질서가 잡힌 가정에는 평화가 깃들고,
평화로운 가정에서 사랑을 만끽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성가대와도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기는 어렵지만, 지휘자 한 사람에게 모든 사람이 맞추면 아무리 많은 성가대원들도 하나가 되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감사함으로 받아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고, 그런 가정에는 사랑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로 얻어지게끔 되어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하나님”보다 더 귀중하게 여김으로 가정을 만들어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복을 주셔서 사랑하도록 도와주시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가정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며, 따라서 믿는 자들이 절대적으로 막아야 할 사항인 것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정에서 하나님을 제거하여 하나님 없는 가정을 정상적인 가정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은 마치 교회에서 하나님을 제외시키고 하나님 없는 교회를 정상적인 교회로 인식하도록 만들려는 것과 진배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듯이 하나님이 안 계신 가정은 엄밀한 의미에서 가정의 역할과 기능을
상실한 상태, 즉 가정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인정하지 않고 두 사람만의 연합체를 만들려는 동성애자들과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은 당연히 멀리해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그들의 잘못된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결혼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들은 생각하기를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 했으니까, 결혼하면 행복해야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왜 정상적으로 결혼한 부부들이 그렇게도 많이 이혼을
하느냐고 반문하면서 결혼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절대로 아니지요.
결혼 제도 자체는 행복을 가져다 줄 수도 없고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이혼의 이유를 결혼제도 자체의 결함으로 생각하는 것은 마치 정비 불량이나 부주의나 운전미숙으로 인하여 일어난 사고를 차 자체의 문제와 결함 탓으로 돌리려 하는 것과 전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차를 타고 있어도 정비를 안 해주거나 운전을 제대로 못하거나 너무 험악하게 몰면 사고는 필연적으로 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에서의 결혼생활 운전 미숙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가정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둘째로 가정을 설계하신 하나님의
지침서를 읽어 보지도 않고 읽었다 해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무식하게 행동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괴롭히는 것과, 셋째로 행복이라고 하는 엉뚱한 표적을 향하여 결혼 생활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그토록 좋은 결혼제도가 파탄이라는 종착역을 향하여 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결혼으로 묶어준 특정한 부부에게 주신 독특하고 숭고한 사명을 감당할 생각은 안하고, 오직 사명을 이행하는 부부들에게만 결과적으로 주어지는, 행복만을 바라보고 가기 때문에 무지개를 향하여 가는 것처럼 도저히 잡지 못하고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결혼제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더 좋은 제도를 찾을 수도 없습니다.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 하기보다는,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법을 배우고 목적을 바로 깨달아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으며 함께 나아갈 때, 정말로 귀한 행복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고슴도치는 가시가 있기 때문에 품어주고 싶어도 품어줄 수 없습니다. 동성애자들을 대하는 기독교인들도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고, 고쳐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기독교인들에게
자신들을 품어 달라고 하는
동성애자들은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와 같기 때문에 피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일단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영적으로 다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문둥병자를 멀리하고, 전염병 환자를 격리하는 것은 문둥병자 자체를 미워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전염병 환자를 격리하는 것도 전염병 환자를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문둥병자나 전염병 환자를 도와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람만이 문둥병자나 전염병 환자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저들을 격리시켜서 위험 요소로부터 스스로 자신들을 보호해야만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친구가 물에 빠졌다고 의리를 생각해서 무조건 뒤따라
물에 뛰어 드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친구를 정말로 살리려면 무조건 뛰어들 것이 아니라 합당한 상황을 만들 줄도 알아야 되고, 합당한 조건이나 상황이 될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인들과 혼인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이 미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이방인들이 가진 종교관이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나 생활습관이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 7:3-4). 동성애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 그냥 밉거나, 나와
내 가족에게 해를 끼칠까봐
두렵거나, 지금 당장 나와 내 자녀들이나 형제들이 동성애자들이 될까 걱정되어서 그들을 멀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휠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동성애자들이 알게 모르게 지니고 있는 "자기중심적 인생관"과 "자기중심적 사고방식"과 "자기중심적 가치관"과 "비정상적인 인간관계" "비정상적인 생활 습관"과 "억지로 하나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헛된노력"과 "창조주의 뜻을 역행하고 무시하려는 어리석음"과 "유전과학의
이름을
빌려서 자신들의 비정상적인 생활상을 합리화시키고 미화시려는 억지"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잘못된 사고방식과 태도와 자세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지배하고 동일하게 물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격리시킬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워서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멀리하는 것이라는 점을 밝히 알려 주고, 생각해보고 돌이킬 기회를 주는 동시에,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고쳐보려는 동성애자들을 향하여는 받아주고, 품어주고, 감싸주면서 진심으로 보듬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으로 저들을 대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조건 감싸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 믿는 신자들이 "값싼 은혜와 값싼 사랑"으로 자기들을 잘 대해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옳다고 말해 주고,
무조건 받아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동성애자들은 더욱 그런 것처럼 보여 집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해 준다는 것은, 저들이 스스로 잘못된 상태임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고전 6:9-10), 마음 문이 열린 사람들에게는 돌이킬 것을 권하고, 저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여 예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다가, 마지막 날에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것이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사랑의 자세라고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4/8/2006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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