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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아이들도 인격을 가진 존재인데 너무 엄하게 주입식으로 교육 시켜서 억지로 부모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 하기보다는 감동 감화가 되도록 만들어 줌으로 아이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에 옮기도록 교육시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Answer
사람은 인격을 가진 존재라는 것은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인격에도 격이 있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김일성도 인격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단지 심하게 뒤틀리고 삐뚤어져 있고 격이 형편없이 낮아 야비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들을 철저히 이용하고 짓밟는 것 등등이
문제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누구나 인격적 존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의 인격이 처음부터 온전히 존중받아야 할 만큼 완벽한 상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모두 교육을 받음으로 존중 받을만한 수준으로 인격이 형성되어져야만 하는 것이고, 아이들은 그런 인격형성의 초기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완벽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완성된 인격을 갖추고 있다는 말 자체가 마땅히 해야 할 사고와 갖추고 있어야 할 건전하고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충분한 지식과 지혜와 실천 의지와 실천력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을 교육시킴에 있어서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아이들이 아직은 인격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미숙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격을 존중받게 해 주기 위해서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즉 순서에 있어서 교육이 먼저이고 인격이 존중받는 것은 나중에 결과적으로 얻게 되는 교육의 열매라는 말입니다. 죄성은 처음부터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지만, 인격은 자라면서 형성되어 가기 때문에 인격이 어떤 과정으로 어떤 영향을 받으며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일생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히틀러나 김일성 같이 극악한 일들을 행하다 간 사람들도 만일 인성 교육을 올바르게 받고 자라났으면, 도리어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훌륭하게 살면서 인류에게 많은 공헌을 하다가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교육과 가정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이런 것들이 인격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바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통하여 아직 인격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한 미숙한 아이들에게 장차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올바른 인격을 갖춘 성숙된 인물들로 양육시켜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따라서 “너무 엄하게 교육
시키지나 않나” “너무 훈련이 강하지 않는가? 또는 “너무 주입식이 아닌가?” 하는 염려보다는 올바른 인격을 확실하게 형성시켜 줄 수 있는 믿을만한 길과 방법이 있다면 불쌍하거나 어렵다는 감상적 동정심을 떠나서 “그 길과 그 방법”을 택하여 자녀들을 최선으로 교육을 시키시는 것이 부모만이 가진 고귀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동 감화로 교육시킬 수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까요? 사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부모님의 말에 자녀들이 감동감화 받기를 소원하는 것이 부모님들의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감동감화로 교육을 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필수적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교육을 시키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감동감화 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보편적 가능성이 없다면, 감화 감동 방법을 요구하는 것은 부모님들에게 교육에서 손을 떼라고 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 언제 어디서나 아이들의 심령이 어렵지 않게 감동감화 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교육을 받는
아이는 교육시켜주는 사람을 대할 때, 감동감화가 저절로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명령을 내리기 전에 또는 적어도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자동적으로 감동감화가 일어날 수 있게 되어야만 차질 없이 교육을 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감동감화가 쉽게 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감동감화를 일으키기 위한 별도의 작업을 많은 시간을 써 가면서 해야만 한다거나, 감동감화가 되게 하기 위해서 점점 더 큰 노력이 요구 된다면 감동 감화를 일으켜 교육시키려는 방법은 단순하고 순진한 사람의 헛된 꿈에 불과한
것일 뿐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셋째로 심령의 감화 감동된 상태가 한번이라도 일단 형성되면, 그 상태가 적어도 상당기간 계속해서 지속된다는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면 가르칠 때마다 감동 감화시키기 위해서 매번 상당한 정력과 시간을 반복해서 투자해야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감동감화를 통해서 기쁨으로 받아드린 교육 내용들은 훨씬 확실하게 삶에서 적용되어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냥 단순하게 엄한 명령 하나로 행동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감동감화가 일어날 만큼 특별히
시간을 쓰고 정성을 쏟는 과정을 통하여 가르쳐준 것인데, 알기만 하고 실천을 안 한다면 감동감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무조건적으로 내리는 명령을 통하여 옮겨지는 실천보다는 감동 감화를 통하여 스스로 행한 실천이 더 확실하고 더 효과적이고 더 지속성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부작용이 현격하게 적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화 감동을 통한 교육 방법을 고집하는 분들은 대개 강한 훈련과 엄한 명령을 바탕으로 한 교육방법이 아이의 마음 안에 심각한 상처와 압박을 남게 만들어서 잠재되어 있다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나쁜 방향으로 폭발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반면, 감동감화가 되기까지 기다려 주는 부모님을 보면서는 엄마 아빠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진하고 실감나게 깨달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감화 감동의 방법으로 교육시킬 경우 부작용은 거의 볼 수 없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굳이 끈기와 시간과 노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요구되는 감동감화를 토대로 한 교육 방법을 고집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인 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현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감동감화를 토대로 교육을 시키겠다는 의도가 잘못 되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현실성이 없습니다. 적어도 다섯 가지의 필요조건들이 어느 정도는 충족 되어야 현실성 있는 교육 방법이라 할 수 있겠는데, 첫째로는 현실적으로 감화 감동은 누구나 일으키게
할 수 있지 못하기 때문에 보편성이 결여되어
있고, 둘째로는 어떤 누구도 자신 있게 언제라도 해낼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인간의 감정은 시간이 감에 따라 무디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것으로도 감정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지만, 똑 같은 정도의 감정적 변화가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갈수록 충격파가 더 커져야 합니다. 즉 처음에는 약간의 희생에도 마음이 동하는 일이 발생하지만, 나중에는 커다란 희생이 치러져야 비로소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지속성이 없음으로 인하여 계속 힘든 작업을 매번 반복해야 합니다. 인간의 감정은 기폭이
너무 심합니다. 오늘은 너무나 감사하고 기뻤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넷째로는 현실적으로는 감화 감동으로 받아들인 훈계의 말씀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실천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감동이 되었다 치더라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을 나중으로 미루어 버리거나, 마음이 식어져서 슬그머니 모르는 척하게 되거나, 고민만 하다가 어물어물 넘어 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자녀들을 교육시킬 때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좋게 말해 주는 것만 좋아 할 뿐, 정작 해야 할 실행은 안하고 꾸물거리다가, 큰 소리가 나야 비로소
몸이 움직이는 것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감동이 된 것과 금방 움직이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다른 문제들입니다. 다섯 번째로 감동감화가 항상 사랑 받는다는 긍정적인 효과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부모의 교육 방법이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더 큰 불만과 실망감을 안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감동감화의 강조가 부작용을 낳고 있음을 부모님들의 모습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마음에 감동감화를 일으키기는 고사하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부터 지르며 성을 내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담하고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결과적으로 감동감화 방법의 집착은 본의 아니게 가정교육 자체를 와해시키는 부작용을 낳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감화 감동을 시켜야만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다 보니 자녀들을 교육시킬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외부로 나가서 전문가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혹시 외부의 전문가에게 의뢰해 보면 감동감화를 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래도 보장은 전혀 없다는데 있습니다. 자녀를 위하여 온갖
희생을 다 감수 하시는 부모님들도 못 시키는 감화 감동을 어떻게 타인들이 시킬 수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감동감화의 방법이 언뜻 듣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좋게 들리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실성이 없다는 점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화 감동 방법의 강조는, 성경 말씀과는 상반되는,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현대교육학의 산물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중에 태어났다고 하는 성경말씀과는 반대로,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지만, 사회는 악하고, 그래서 죄는 악이 아니라 사회에서 전염된 병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행동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듣고 배운 진리의 말씀이나 전수 받은 생활태도 못지않게, 잠재의식이라고 믿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을 신봉하기 때문에 덜
진화된 동물들의 단순한 행동이 많이 진화된 인간들의 복잡한 행동의 뿌리 속에서 근저를 이루어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믿고 연구 활동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즉, 인본주의자들이 정립해서 가르치고 있는 교육 이론들은 하나님은 없고, 그래서 당연히 하나님의 간섭이나 도움이나 인도하심이 없다고 생각하여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시 14:1) 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연구하여 발표한 것은 믿고, 인간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참고사항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왜 인본주의자들은 감화 감동의 방법을 유난스럽게 강조할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지만,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는 감화 감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사람은 사람에게 감화 감동을 줄 능력이 없다는 것이 우리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핵심인 것입니다.
감동감화는 하나님만의 영역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감동”이나 “감화”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문장을 보면, “하나님,” “여호와,” “여호와의 신,” “하나님의 신,” “신,” 또는 생략되었더라도 그런 의미를 가진 단어가 주어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페르시아왕 고레스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고, 다윗, 느헤미야, 삼손, 엘리사, 에스겔과 같은 인물들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셨던 것입니다. 감동이나 감화는 온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인 부모에게 감동 감화로 교육시킬 것을 권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이론가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감화 감동을 마음을 사는 것으로 대신하려 하면 안 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 진 서신서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 (벧후 3:16)”에 이른 사람들처럼, 자녀들을 억지로 감화 감동 시키려고 편법을 사용하여 어린 아이들에게 맛있는 사탕, 과자, 게임기구, 놀이기구와 같은 것들을 주어 어린 마음들을 사로잡으려
하거나, 십대 아이들에게 극장 구경 시켜주고,
파티에 참여할 수 있게 허락해 주고, 친구들과 어울려 주말에 쇼핑을 할 수 있게 해줌으로 그 해답으로 부모님의 말을 잘 따르도록 하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적 칭찬이나 선물공세나 살살 얼리거나, 또는 유치한 요구사항을 몇 가지 들어줌으로 아이들을 움직이게 만들려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고 마음을 사는 것이지 결코 감화 감동 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감동감화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그 외에 해야 할 일들을 부모님들이 충실히 하시는 것이 가장 올바른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감동감화 시키는 일까지 우리들에게 하라고 하셨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대신 맡아 주시는 것이 정말로 감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일을 혼자서 하는 것보다 둘이서
힘을 합쳐 함께 일하는 것이 쉽습니다. 더구나 성령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쉽고 영광스럽습니까? 성령께서 하시는 일까지 하려하지 말고, 우리에게 하라고 맡겨주신 일을 충실히 해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자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 하나하나를 머리칼 하나까지 세실 정도로 지극한 관심을 가지시고 간섭하시고 인도하시고 도우시면서, 여러 가지 지키고 따라야 할 사항들을 조목조목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할 일은 부정적인 태도를 버리고 긍정적인 자세와 감사한 마음으로 맡겨진 일에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부지런히 가르칩시다. 필요하면 매를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 13:24) 혹시 매가 나쁜 잠재의식을 만들어 내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주제넘은 생각입니다. 자녀들의 심령에 관한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시키라고 부모님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명령하신 일만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우리들이 마땅히 취할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감동감화의 방법에 너무 집착하거나, 그 압력에 너무 시달리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은 주님께 맡깁시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힘든 일들은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께서 주시는 가벼운 멍에, 즉 사람이 할 수 있는 부분만
감사함으로 “충성스럽게”, “부지런하게” 하면 됩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평안한 마음으로, 종의 입장에서, 하라고 하시는 그대로,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맡겨주신, 실행 가능한 작은 일들을 성실히 해 나갈 때, 성령께서 나머지는 다 감당해 주실 줄 믿습니다. “(자녀 교육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교육방법 자체가 인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부모가 독재자처럼 자녀들 위에 군림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원리원칙을 정해서 무조건 따라오게 만드는 것은 지적하신대로 정말로 위험한 일입니다. 아이가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어도 일방적으로 부모의 기분에 따라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른다면
인격성형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은 확실합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점수에만 모든 초점을 맞추어 평가를 내리는 방법은 도리어 이기적이고 편협하고 어두운 인격을 형성하게 만들어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방법도 인격형성에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은 정말로 확실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방법뿐만 아니라, 교육의 목표도 생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상적인 방법만을 고집하다가 중요한 목표를 놓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현명한 판단과 적절한 대처가 또한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글자를 알고 숫자를 알아야 그 다음 단계의 공부를 계속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글자를 안 배우겠다고 고집하고,
숫자를 배우기 싫다고 고집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발적으로 스스로 우러나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도와주는 민주적 방법이 중요하기 때문에 스스로 배우겠다고 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실 것입니까? 몇 년이고 흥미가 유발될 때까지 적합한 방법을 찾으며 기다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억지로라도 가르쳐 줄 것입니까? 어떤 것이 현명한 선택입니까? 억지로라도 강압적으로라도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을 신속하게 가르쳐 주시는 분이 지혜로운 부모님 아닐까요? 그것이 부모에게는 의무인 것이고 자녀들에게는 복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감동감화의 방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감동감화의 방법 자체가 정말로 좋은 것인지, 실행 가능한 것인지, 시간을 끌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더라도 감화 감동으로 가르쳐야만 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곰곰이 또 상세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00%
순종하도록 교육시켜야 하나요? ☞
자신의
의사표시를 어느 정도까지 존중해 주어야 하나요? ☞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10/2/2006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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